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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미래(未來)를 희망으로 바꾸는 방법- 이문재(경제부장)

  • 기사입력 : 2018-02-0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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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는 경제 개발 드라이브가 거셌던 시기다. 5·16 군사정변으로 태동된 제3공화국은 정권 창출 과정에서 불거진 사회적 불만을 ‘밥’으로 상쇄하려 했다.

    1·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은 경제 전체의 자원을 배분하려는 자원계획과 포괄적 계획에 집중했다. 1·2차 연도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 3차 연도(1972~1976)는 경제 규모의 확대에 초점을 맞췄다. 이 시기에는 닉슨 독트린으로 인한 국제질서 혼란, 석유파동 등으로 어려움에 처하긴 했지만 외자 도입, 수출 드라이브, 중동 건설경기 붐으로 난관을 헤쳐갔다. 3차 연도에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한 것이 바로 중화학 공업. 또 한 가지는 기능인 육성이었다.

    70년대 중·후반의 고교 진학자들이라면 당시 정부가 기능인 확보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생생히 기억할 것이다. 우수한 예비기능인력 확보를 위해, 중등 상위학생의 공업계 고교 진학을 권유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각종 장학혜택과 비교적 안전하게 보장된 진로는 어린 학생들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이와 함께 기능(技能)에 대한 우호적인 사회 분위기 조성에도 적극 나섰다. 기능대회가 대표적인 것으로, 도·광역시 대회, 전국대회를 거쳐 국제기능올림픽까지 행정이 앞장서서 이슈화했다. 77년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서 열린 제23회 국제기능올림픽에서 우리나라가 금메달 12개로 서독과 일본을 제치고 사상 첫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선수단이 입국하자마자 이들을 청와대로 초청, 훈장과 수백만원의 하사금을 내리고 어깨를 두들겼다. 지방에서도 카퍼레이드가 열렸다. 이 덕분인지 국제 무대에서 한국 기능인의 독주가 계속됐고, 덩달아 중화학공업 등 제조업과 이를 뒷받침하는 뿌리산업의 발전도 가속화됐다.

    산업현장에 숙련기술자들이 사라지고 있다. 1대 숙련공들은 경기불황과 정년으로 자리를 뜨고 있지만, 그 자리를 대신할 젊은 숙련공이 없다. 청년들은 정규직의 장벽에 막혀 불안한 일용근로자로 전전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숙련기술 단절이라는 뼈아픈 결과를 초래했다.

    조선업종의 경우 작업의 70%는 하청이 맡는다. 그러나 수년간의 불황으로 하청이 해체되면서 숙련도와 생산성이 높은 젊은 인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대기업은 정규직에 대한 부담으로 신규 인력을 보충하는 것을 회피, 결국 대기업에서도 하청에서도 젊은 숙련공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자동차나 철강업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경남지역의 수출을 견인하던 조선업의 배관업무는 10년, 가용접을 하는 취부일은 최대 5년의 숙련기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기업은 손쉬운 하청을 활용했고, 하청이 무너지니 숙련기술자도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2015년 20만명을 넘어섰던 조선업 근로자 수는 지난해 13만명, 올해는 10만명을 밑돌 것으로 전망된다. 조선업계의 걱정은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에 있다. 과거 일본은 선박경기가 나빠지자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이 때문에 이후 경기 개선에도 불구하고 시장점유율을 회복하지 못했다. 무조건의 감축보다는, 불합리하고 한쪽에만 유리한 고용구조와 임금체계의 개혁과 청년들이 안정되게 기술을 숙련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위해 제조업 인력 경쟁력은 필수다. 현장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고용과 임금의 유연성이 아쉽다’는 탄식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미래(未來)는 준비하면 불안하지 않다.

    이문재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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