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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참사로 본 죽음의 무게- 전강준(부국장대우 사회2부장)

  • 기사입력 : 2018-02-0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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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인터넷 등의 발달로 숨길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사소한 일이라도 SNS를 통해 실시간 올라오고 네티즌들은 그에 대한 잣대를 들이댄다. 시시각각으로 죽일 놈과 살릴 놈이 판단되는 것이다. 하물며 ‘죽음’에 관한 거라며 다양한 시각이 올라오고 시시비비를 가린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도중에 죽음의 무게도 달라진다. 가난한 자의 죽음은 너무 가볍다. 예나 지금이나 가난한 자의 죽음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노동현장에서 죽건 길거리를 걷다 떨어지는 벽돌에 맞아 죽건 죽음을 뒤치다꺼리한 뒤 “언젠가 가야 할 목숨 조금 일찍 간 것뿐”이라는 것이 죽은 자의 뒤통수에 대고 하는 위안의 소리이다.

    예전에 군대에서 죽으면 개죽음이라고 했다. 물론 기사 한 줄 나지 않았고, 부모 불러 조용히 처리하면 끝이었다. 사건도 사고사로 처리되는 일이 비일비재했을 것이고, 입 다물고 끝나는 것이 대세였다. 가난한 자의 죽음보다도 더한 군대에서의 죽음이 개죽음이라 한 이유였다. 하지만 요즘 군대에서 죽는 것은 만천하에 알려지면서 시시비비 속에 숨길 수 없는 일이 됐다.

    최근 죽음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된 사건이라면 세월호 침몰과 세종병원 화재이다.

    지난 2014년 4월. 안산 단원고 학생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의 침몰은 우리를 패닉에 빠지게 했다. 아직 꽃다운 꿈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10대에 생을 마감한 것에 대해 모두 마음이 미어졌다. 이 사건은 정치쟁점화됐으며 대통령이 파면되는 일로 이어진 것과 무관하지 않았다.

    어린 학생 한 명 한 명의 목숨의 무게는 무거웠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젊은 나이에 죽었다는 것에 한 명의 죽음 무게가 천 근의 쇠무게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지난달 26일. 밀양 세종병원 화재는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사망자는 계속 늘어 7일까지 47명이 됐다. 아직 중증환자가 7명이나 더 있다 하니 확실한 사망자 수를 가늠하기 어렵다. 화재 참사 치고는 많은 목숨을 앗아간 사고였지만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라 모두 천 근의 무게처럼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다.

    세월호의 죽음이 못다 핀 청춘에 무게를 두었다면, 세종병원 참사는 죽음보다도 어르신들이 살아온 인생에 방점을 찍는 느낌이다. 그래서 죽음이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현실이 죽음의 의미를 갈라놓았지만 죽음의 무게만은 같아야 한다.

    가난한 자의 죽음이나, 군대에서의 억울한 죽음이나, 젊은이의 서글픈 죽음이나, 움직일 수 없는 노인들의 죽음이나 죽음의 무게는 똑같은 것이어야 한다. 어느 순간 자살자가 늘어나고, 생명을 천하게 여기는 왕따와 구타가 일어나면서 죽음이 대수롭지 않게 취급됐다 하더라도 생명과 죽음은 귀한 것이다.

    세종병원 화재로 중증환자가 아직 있지만 더 이상 사망자가 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집트에서 사람이 죽으면 저울에 심장과 깃털을 올려놓고 무게를 달아 죄의 유무를 판단했다고 한다. 심장은 고사하고 한 사람의 죽음이 새 깃털보다 가볍게 취급되는 우리 현실이 됐어야 되겠는가 싶다.

    전강준 (부국장대우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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