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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등자- 허승도 논설실장

  • 기사입력 : 2018-02-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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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을 탈 때나 말 위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발을 걸쳤던 ‘등자’가 디지털시대 혁신의 아이콘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등자는 기원전 4세기경 중국 북부의 흉노족에 의해 만들어져 동서양으로 전파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사용된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삼국사기에 따르면 3세기부터 널리 이용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발걸이인 등자는 단순한 구조이지만 말의 속도를 통제하는 데도 이용돼 기마병의 필수 장비로 세계의 역사를 뒤흔들었던 발명품이었다.

    ▼서기 378년 현재의 터키 북서쪽에 위치한 아드리아노플에서 동로마제국과 고트족 간의 전쟁에서 무적의 로마제국을 상대로 고트족이 압승을 한 비결도 등자에서 찾을 수 있다. 등자가 없었던 로마군 기병은 말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한 손으로 고삐를 잡고 싸워야 했다. 이에 비해 고트족은 기마민족답게 말의 안장에 등자를 매달아 기마병이 달리는 말에서 안정적으로 활을 쏠 수 있었고 자유롭게 칼과 창도 휘두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칭기즈칸이 13세기 유럽과 아시아에 걸친 ‘몽골제국’으로 팍스 몽골리카(Pax Monglica)를 탄생시킨 배경에도 말안장에 달린 등자가 등장한다. 기마민족이자 수렵민족인 몽골인들은 말 위에서 활쏘기에 탁월한 능력이 있었는데 등자를 이용해 더욱 자유로운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등자는 발걸이에 불과했지만 말과 기마병에게 일체감을 준 덕분에 전쟁 승리에 적잖게 기여하면서 칭기즈칸을 세계의 정복자로 우뚝 서게 했다.

    ▼21세기 디지털시대에 2000년 전에 발명된 등자가 다시 조명되는 까닭은 전영현 삼성SDI 사장이 올 들어 ‘등자론’을 꺼내들면서부터다. 전 사장이 등자론을 제시한 이유는 급성장하는 배터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기술개발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칭기즈칸은 초원을 달리며 영토를 확장했지만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디지털 세계에서 영토를 확장해야 한다. 선진국들은 디지털시대 등자를 찾기 위해 무한 경쟁을 하고 있다.

    허승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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