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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積弊)에 대하여- 김상군(변호사)

  • 기사입력 : 2018-02-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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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폐(積弊)란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부패, 비리 등의 폐단’을 말한다. 우리는 몇 년 전까지 적폐라는 단어를 흔히 사용하지는 않았다.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탄핵으로 물러난 전 대통령의 발언에서 처음 주의 깊게 들었다. 세월호 사건 직후, 참사 수습과 대응 과정에서 국정운영이 총체적 난국에 빠진 것이 여실히 드러난 만큼 ‘국가개조 수준의 적폐 청산에 적극 나선다’는 발표에서 적폐청산의 의미를 음미해보게 되었다.

    처음 적폐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나는 화자(話者)의 단어 선택이 절묘하다고 감탄했다. 누적된 폐단이기 때문에 말하는 사람의 잘못이 아닌 전(前) 사람의 잘못임을 부각할 수 있고, 부패나 비리를 청산해야 한다는 데에 반대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잘못이 아니지만, 청산해야 하는 대상으로서 ‘적폐’만큼 적확하고 위력적인 단어는 여태까지 없었다. 정치는 수사(修辭)의 싸움이기도 한데, 적폐를 거론했던 정치세력이 도로 적폐가 되어 쫓기고 있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적폐는 개념 본질적으로 여러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구조적인 원인을 가진 것을 지칭한다. 여러 가지 구조적인 문제점이 오래 지속되어 개선하기 힘든 폐단을 적폐라고 부른다. 과열 경쟁의 교육시스템, 엄청난 사교육비, 백년을 벌어도 한 채 사기 어려운 아파트값, 출구가 보이지 않는 남북대치상태,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는 청년 실업 등은 오랜 시간에 걸쳐 누적되어 온 뿌리 깊은 병폐로서 누구라도 적폐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 쌓여야 적폐라고 부를 수 있는가? 우리나라는 대통령의 임기에 비례하여 5년 내지 10년 단위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구세력을 단죄하기 위한 구호로서 적폐청산은 매우 위력적인 전술(戰術)이기는 하지만, 특정 개인이나 정치세력의 잘못으로 비롯된 비정상적 상태를 적폐라고 부르는 것은 실은 맞지 않다. 종전의 정파가 잘못한 일이 있다면 그 사람을 벌주고 그 세력을 축출하면 될 일일 뿐 이를 적폐라고 낙인찍는 것은 과도하다. 전 정권에서 호의호식하였다는 이유로 함께 지내던 선배나 동료를 어느날 문득 적폐세력이라고 규정짓고 그 기득권을 내어놓으라고 요구하는 일은 또 다른 정치투쟁에 불과할 뿐 진정한 의미의 적폐청산이라고 보기 어렵다.

    지금의 적폐청산은 너무나 정치적인 사안에 집중되어 있고, 너무나도 수사기관에 의한 단죄에 치중되어 있다. 칼자루를 쥔 측은 어느 영화에서 본 것처럼 ‘상대와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철저히 짓밟아야 된다’는 교훈을 얻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헌법과 권력구조는 항상 정권교체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대한민국은 여태까지 평화적 정권교체가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수없이 많은 피를 뿌렸고, 이를 이루어낸 것은 1987년으로서 불과 30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평화적으로 정권을 교체하는 전통은 세워졌으나, 정권 교체 후 구세력을 철저히 단죄하는 일은 반복되고 있다. 권력을 평화적으로 획득하는 시스템은 갖추어졌으나 상대를 처절히 응징하는 일은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언제까지 이런 일을 거듭해야 하는가?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잘못이 있으면 그 잘못을 밝혀서 이를 바로잡고 처벌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적폐청산이라는 구호로서 사회의 제도와 시스템을 바꾸는 의무를 외면하고, 철저히 과거지향적인 방법으로 상대 세력의 단죄에만 과도하게 치중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일이 될 수 있다.

    본래 의미의 적폐는 쉽게 ‘청산’되지 않는다. 수사와 재판으로 적폐청산이 이루어질 수도 없다. 적폐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과 제도를 바꿈으로서 청산된다. 적폐는 남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잘못이며, 특정 진영을 숙청하여서 청산될 수 없는 온 국민이 함께 풀어내어야 할 숙제임을 자각해야 한다.

    김상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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