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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금메달 오명- 이학수 뉴미디어부장

  • 기사입력 : 2018-02-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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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창 올림픽에서 꼭 메달을 땄으면 하는 선수가 있었다. 프리스타일 스키에 출전한 이미현이다. 그는 1994년 진주에서 태어나 1살 때 미국에 입양됐다. 2015년 한국 국적을 회복해 한국선수로 올림픽에 나왔다. “애국가가 울리면 친엄마가 볼지도 모른다”며 간절하게 친부모를 찾고 있다. 아이스하키 박윤정 선수 사연도 가슴 찡하다. 1992년 서울에서 태어나 생후 4개월 만에 미국에 입양됐다. 2년 전 국적을 회복해 한국 국가대표로 뛰고 있다.

    ▼설 아래 해외입양을 반대하는 시민단체가 김해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해 12월 생을 마감한 노르웨이 국적 입양인 얀 소르코크 (한국이름 채성우)씨 추모 성격이었다. 친부모를 찾으려고 그는 한국에서 5년을 헤맸다. 유해는 고향에 묻히지도 못하고 다시 노르웨이로 갔다. 시민단체는 ‘산업화’한 해외입양을 비판했다. 수요가 많은 선진국에 비싼 외화를 받고 넘긴다는, 부끄러운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이렇게 입양된 사람 가운데 정체성을 고민하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가 있다.

    ▼지난해 5월 자신의 뿌리를 찾던 필립 클레이(한국이름 김상필)씨도 그렇다. 9살에 미국에 입양됐지만, 시민권을 갖지 못했다. 2001년 입양과 동시에 시민권자가 되는 법률이 시행됐으나 만 18세가 넘은 그에게는 예외였다. 필립은 2009년 입양 31년 만에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한국으로 추방됐다. 혈육을 찾지 못한 그에게 고국은 맘 둘 곳 없는 ‘타국’이었다. 정신질환과 약물중독으로 힘들게 살던 필립은 자살로 한 많은 삶을 마쳤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해외로 입양을 보내는 유일한 국가다. 지금도 하루 1명꼴로 보낸다. 우리나라 해외입양은 6·25전쟁 후가 아닌 경제성장이 본격화되면서 오히려 늘었다. 1985년에는 8837명이나 해외입양됐다. 미국 내 해외입양인의 3분의 1이 한국에서 갔다. 그래서 ‘아동수출국’ ‘해외입양 금메달 국가’란 오명을 얻었다. 이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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