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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보행자 중심의 교통 체계와 교통 문화- 이춘우 (경상대 불문학과)

  • 기사입력 : 2018-02-2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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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는 벌써 20년째 OECD 회원국 가운데 보행자 사망률이 가장 높다고 한다. 경찰청 통계 자료에 의하면 2016년에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이 4292명에 이른다. 하루에 12명 가까이 교통사로 목숨을 잃고 있는 꼴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01년 8097명에 이르던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해마다 조금씩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필자가 보기에 우리의 교통 문화와 체계는 여타 선진국에 비해 아직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 프랑스의 사례는 이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

    파리에서 운전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도로는 넓지도 않고 미로와 같다. 세계적인 도시이지만 변변한 왕복 4차선 도로도 별로 없다. 보행자들을 위한 안전지대와 길가 주차 구역 때문에 차선이 갑자기 줄거나 바뀌는 경우가 빈번하다. 도처에 있는 일방통행 길은 운전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곳곳에 설치된 회전 교차로 또한 익숙하지 않은 우리나라 운전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예를 들어 개선문을 감싸고 도는 회전교차로에서 12개나 되는 길 가운데 자신이 원하는 길을 정확히 찾아 빠져나가기는 쉽지 않다. 신호 체계 또한 운전을 어렵게 만든다. 도로 가에 기둥 형태로 설치된 조그만 신호등이 대부분이다 보니 신호등이 잘 보이지 않는다. 또 교차로에서는 교차로 진입 전에만 신호등이 있고, 교차로 건너편에는 없기 때문에 정지선을 넘어서 정차했다가는 낭패다. 이처럼 도로가 좁고 신호등이 불친절하기 때문에 파리 시내에서 과속을 한다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게다가 도심 제한 속도가 50㎞이고 위반 시 교외에서보다 두 배나 많은 벌금을 내야 한다. 파리는 운전자에게는 매우 피곤한 도시임이 분명하다. 이렇게 교통 체계가 복잡해서인지 파리에서 큰 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파리는 운전자에게는 지옥이지만 보행자에게는 천국인 셈이다. 여행객들에게 낯선 풍경 중의 하나가 파리 사람들이 무단횡단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대부분 불법이 아니다. 50m 이내에 횡단보도가 없으면 무단횡단을 해도 된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운전자들은 보행자가 무단횡단하더라도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서행하거나 정차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보행자 중심의 문화가 발달했다는 증거이다. 2015년 통계를 보면 프랑스 인구 10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는 53.8명으로 한국(89.7명)의 약 60% 수준이다.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3461명 중 보행자 비율은 13.5%로 한국(38.8%)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우리의 사정은 어떠한가? 우리나라의 교통 체계는 지나치게 자동차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교차로의 신호등은 멀리서부터 가속을 하기 좋게 높은 곳에 설치되어 있으며, 친절하게도 교차로 진입 전후에 높은 곳에 대형 신호등이 달려 있다. 정지선을 굳이 지킬 필요가 없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신호를 무시하고 질주하는 차들 때문에 녹색등이 들어온 횡단보도도 마음 놓고 건너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프랑스처럼 교차로 진입 전에만 신호등을 높지 않게 설치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 도심뿐만 아니라 교외의 대부분의 교차로에 설치되어 있는 회전 교차로는 이런 점에서 보행자를 보호할 수 있는 매우 좋은 체계다. 교차로 진입을 위해서는 무조건 일단 속도를 줄여야 하기 때문에 보행자 사고를 막을 수 있고, 기계적으로 교통 흐름을 차단하지 않기 때문에 차량 흐름에도 도움이 된다. 시험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회전교차로를 전국적으로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 또한 도심 제한 속도를 현재보다 줄이고 각종 교통범칙금을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 이면도로에서 보행을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도록 일방통행로를 확대하고 인도를 설치할 필요도 있다. 무엇보다 어떠한 경우에도 보행자를 우선시하는 교통 문화의 정착이 필요하다. 이러한 다방면의 노력만이 보행자 사망률 1위의 오명을 벗게 해 줄 것이다.

    이춘우 (경상대 불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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