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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술 한잔 못하는 딱딱한 사회- 전강준(부국장대우 사회2부장)

  • 기사입력 : 2018-03-1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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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뺑소니 사건 주범으로 몰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것이 여간 귀찮지 않았다. 경찰서에서 첫 조사를 받은 후 며칠 후 재조사가 필요하다며 또 불려 나갔다. 가족 보기도 미안하고, 뭘하는 짓인지 모르겠다고 자책까지 했다.

    사건은 몇 년 전, 어느 시골길을 운행하던 중 수십 미터 앞 도로 중앙에 누워 있는 할아버지를 발견하고, 차를 세워 도로변 그늘 밑으로 안전하게 옮긴 게 화근이었다. 차에 받힌 것은 아닌 것 같고, 몸도 정신도 멀쩡했다. 도로에 막 나온 동네 주민에게 가족분에게 알려주라며 그 길로 현장에서 떠났다.

    그날 저녁부터 뺑소니 신고로 졸지에 뺑소니범이 됐다. 몇 주간 시달렸다. 경찰조사 결과 부부 싸움을 참지 못해 도로변에 드러누워 있었다는 게 밝혀지면서 사건은 마무리됐다.

    전에도 “가는 길에 동네까지 태워달라”고 하던 할머니를 태워 준 적 있다. 목적지까지 간 할머니가 문이 열리지 않자 “문을 왜 안 열어주요. 아이고 얄구지라” 한다. “할머니 문고리 한 번 더 당기면 열립니다”고 했지만 졸지에 ‘얄구진 놈’이 됐다.

    어떤 친구는 이와 비슷한 경우가 많다는 얘기로 주의를 환기시킨다. 시골길에 시장보따리 들고 차를 세우는 할머니 한 분 태웠다가 방지턱을 넘었는데 “아이고 허리야” 하며 부상을 주장해 치료비를 물려줘야 했다는 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사람을 돕는다며 심폐소생술도 함부로 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만약 잘못됐을 때는 홀딱 그 책임을 덮어쓸 수 있다고 한다.

    사람들 모두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아주 극소수의 얘기다. 하지만 그만큼 세상이 딱딱해졌다. 돕는 사람이 나쁜 사람으로 몰리거나 몰아세우는, 어쩌면 우리가 딱딱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느낌이다.

    사회가 우리를 딱딱하게 만드는 반대사례도 있다.

    산에서의 술 한잔이 정신 나간 놈이 되는 딱딱한 사회 속에 이젠 살게 됐다.

    환경부는 국립공원을 비롯한 도·군립공원 내 대피소와 탐방로, 산 정상에서 음주 행위를 금지했다. 당장 오늘(13일)부터 시작이다. 위반시 처음 5만원, 두 번째부터는 1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돼 산에서 막걸리 한잔 못 마시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음주로 인한 산에서의 안전사고 발생 우려가 높다는 게 그 이유다. 물론 산행을 하면서 구조대 등을 믿고 스스로 안전을 소홀히 해 여러 사회비용을 초래하는 것은 쉽게 허용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피소 등이나 산의 적절한 지점에서 술 한잔하는 것이 국가의 관리대상이 돼야 하는지 의아스럽다. 산에서 한잔을 마시기 위해서는 단속을 해야 할 관리청 등 공단 직원들과 숨바꼭질을 해야 하고, 아예 대피소를 벗어난 시점에서 전을 펼쳐야 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나 싶다.

    일본에는 산에서의 안전은 산에 오르는 사람의 전적인 몫으로 규정한다. 물론 위험한 곳에 통제, 규제 등도 있겠지만 산에 들어가는 사람은 스스로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게 일본정부가 산행자를 바라보는 시각이라 한다.

    우리는 구조비용을 줄이려다 자연 훼손이 더 심해질 것 같다. 이런 구조 속에서 술 한잔도, 선행도 하면 안 되는 딱딱한 사회 속에 갇혀 가는 느낌이 절로 든다.

    전강준 (부국장대우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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