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6일 (금)
전체메뉴

고장난 자판기의 법칙- 안상준(농협중앙회 창녕교육원 교수)

  • 기사입력 : 2018-03-20 07:00:00
  •   
  • 메인이미지

    얼마 전 어느 지방으로 출장 다녀오면서 겪었던 일이다.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먹으려고 돈을 넣었는데 아무 반응이 없었다. 몇 번이고 두드려 봤지만 음료수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고장 난 자판기였던 것이다.

    관리자에게 연락하고 싶었지만, 기차 출발 시간이 임박해서 그냥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내내 찜찜했던 기억이 난다. 만약 누군가가 ‘고장’이라고 메모를 적어서 붙여 놓기만 했더라도 나 같은 또 다른 피해자를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하고 아쉬움이 남았다.

    사람의 인생살이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가끔 자판기처럼 고장 날 때가 있다. 물론 고장이 나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를 인식하는 것 자체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사실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판기가 고장이 난 것을 알았으면 메모를 남겨서 다른 사람들은 더 이상 돈을 넣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나만 조용하면 괜찮겠지’,‘다른 사람들은 모를 거야’라며 몰래 문제를 덮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지금 당장 눈앞에 일어난 문제를 회피하고 싶은 것이다. 일시적으로는 조용하게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더 큰 위험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고장이 나면 그 즉시 고장 난 사실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요즘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달로 인해 예전보다 어떤 사실을 사람들에게 공유하는 방법이 훨씬 편리해졌다.

    최근 가장 핫한 이슈인 ‘미투운동’을 보면 공유의 파급효과를 잘 알 수 있다. 미투운동은 작년 10월 미국에서 영화제작자인 허비 웨인스타인의 성추행에 대해 여배우들이 SNS를 통해 해시태그(#MeToo:나도 당했다)를 다는 행동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제2, 제3의 피해자 발생을 막기 위한 용기 있는 몇몇 사람들로 시작된 미투운동이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사회 여러 분야에서 그동안 숨겨져 있었던 고장 난 자판기가 하나씩 하나씩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문학계, 연극계를 넘어 정치계, 그리고 이제는 교육계까지 예전에는 언급조차 하기 힘들었던 문제들이 이제 사회 전체 문제로 인식되고 국민들과 함께 공유되고 있는 덕분에 세상이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저자인 스티븐 코비 박사는 ‘최고경영자(CEO)는 위기가 발생했을 때 임직원들과 위기 상황을 공유하고 그들이 파트너로 동참하고 있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CEO는 회사에 어떤 고장이 났을 때 직원들 사기 저하를 두려워해 위험을 감추려는 경향이 크다. 하지만 그보다는 위기를 공유하는 것이 오히려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인 것이다. 위기공유를 통해 직원들이 소속감을 느끼게 되면 위기가 생겼다고 회사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위기극복을 위한 해결책을 같이 고민하게 된다.

    즉,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인식만 하고 남들과 공유하지 않으면 그것은 혼자만의 문제이고 혼자만의 고민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게 되면 그 문제는 더 이상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로 탈바꿈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의 지혜를 모을 수 있고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더 쉬워진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어려움을 만날 때가 있다. 이럴 때 내가 겪었던 어려움을 다른 누군가는 또다시 겪지 않도록 ‘고장’이라는 메모를 남길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

    안상준 (농협중앙회 창녕교육원 교수)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