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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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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테어링 아트로 현대미술 개척한 현직 경찰관 이임춘 화백

거제 지키는 경찰관, 그림으로 세계를 사로잡다

  • 기사입력 : 2018-03-3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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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직 경찰관인 이임춘 화백이 테어링 아트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전강용 기자/


    지난 25일 거제시 동부면 학동리의 학동마을. 마을 어귀 몽돌해수욕장이 보이는 화실에서 이임춘(53) 화백을 만났다. 입구에 들어서자 벽에 걸려 있는 그림 한 점이 눈에 꽂힌다. 흡사 거대한 폭발의 순간인 빅뱅의 찰나를 표현한 것일까. 각도를 틀어서 다른 위치에서 보니 그림의 명암이 바뀌며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 화백이 “(작품의 제목이) 천지창조예요”라고 말을 건넸다.

    그제서야 인터뷰를 위해 이곳에 온 목적을 깨달았다. “제가 호칭을 뭐라고 불러야 하죠?”

    사실 그는 현직 경찰관이다. 현재 거제경찰서 거제파출소 둔덕치안센터에 근무하고 있는 그는 20여년째 경찰 공무원이다. “편하게 부르이소.”

    이 화백은 캔버스를 찢어 표현하는 ‘테어링 아트’ 기법으로 그림을 그린다. 이 화백이 독창적으로 고안한 기법이다. 캔버스 천을 파괴해 그림의 배경 또한 작품의 주된 요소로 어우러진다.

    경찰관이 어떻게 붓을 들었는지 매우 궁금했다. 게다가 그는 미술 비전공자다.

    “1994년에 경찰에 입문했죠. 1998년도쯤인가 채무 문제로 건강까지 악화돼 큰 시련이 닥친 시기가 있었어요.”

    그는 붓을 들어야 마음이 평화로왔다고 했다. 처음에는 무작정 정물화 등 유화를 그렸다. 그런데 그는 그림을 배운 적이 없다. “어떻게 미술을 전공하지도 않았는데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거죠?”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어릴 때부터 그렸어요.”

    그는 3대째 전통 대나무 공예를 이어온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전통 대나무 공예 명장이었다. “어릴 적부터 대학 때까지 아버지를 도와 방패연 등에 그림을 그렸죠. 사회 나와서 한동안 그리지 않았아요. 시련을 겪은 후 무작정 그림을 그리게 된 거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피가 테어링 아트로 이어지기까지 과정이 궁금했다.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 그렸던 그림이지만 점점 욕심이 생겼어요. 내가 잘하는 죽공예 기법을 현대미술에 응용할 수 없을까. 대나무 올을 엮는 느낌을 캔버스에 옮겨보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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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임춘 화백의 작품들.

    어릴 때부터 대나무 올을 엮었던 그 감각을 살려 현대미술로 승화시켜 보고 싶은 욕구, 테어링 아트는 그렇게 탄생했다.

    처음에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십자올 형태로 구성된 캔버스 천을 칼로 찢어내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미세한 올이 하나라도 잘못 끊어지면 작품 전체를 버리기 일쑤였고 천이 늘어지거나 수축돼 작품을 망치는 경우가 많았다. “엄청난 실패 끝에 캔버스 천을 제대로 찢어내는 나만의 노하우가 생겼어요.”

    그는 2004년 무렵부터 그만의 기법을 테어링 아트라 이름 붙이고 작품을 페이스북에 꾸준히 올렸다. 수년간 계속 작품을 올리자 그의 작품에 대한 진가는 이역만리 먼 곳에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테어링 아트의 첫 작품은 ‘블랙홀’이다.

    터키, 미국, 이탈리아 등 해외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하자고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지난 2011년 터키 이스탄불 IAC갤러리에서 전시회를 개최했고 이후에도 해외에서 여러 차례 전시회를 가졌다.

    그의 그림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탈리아 팔레르모 전시회에서 대상 수상, 현대미술의 본고장인 미국의 마이애미 솔로 전시회 ‘가장 인상적인 작가’ 선정,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알렉산더 갤러리 전속작가를 지내는 등 숱한 이력이 이를 증명한다. 몇 해 전에는 샌디에이고 국제공항 신청사 건립 기념으로 청사에 그의 작품이 수개월간 전시되기도 했고, 미국 알렉산더 갤러리에 현대미술의 거장인 앤디 워홀의 유작 ‘마릴린 먼로’와 나란히 전시되기도 했다.

    해외 팬들도 늘고 있다. 몇 년 전 프랑스 국민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유가 그의 화집을 보고 극찬하며 작품 ‘인생’을 구입하기도 했다.

    한 작품을 제작하는 데 1~3개월이 걸린다. 그는 평일에는 일과가 끝나는 대로 시간을 쪼개 틈틈이 작업하고 주말에는 화실에서 살다시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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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임춘 화백의 작품들. 대나무 올의 느낌을 살려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작품에만 매달릴 수 없다 보니 밀어내기식으로 4~5개 작품을 동시에 진행해요. 구상이 떠오르면 바로 캔버스에 옮기죠. 바탕그림은 큰 테두리만 연한 선으로 표시하고 세부 그림은 거의 그리지 않고 바로 작업에 들어갑니다.”

    지난해 6월에는 경찰청으로부터 겸직 허가도 받았다. 경찰관으로서 퇴임 때까지 다른 직업이 보장되는 것은 거의 전무후무한 일이다. 겸직 허가 사유에는 이렇게 적혔다. ‘작품을 통한 대한민국 경찰의 위상 제고 및 한국 미술문화 발전에 기여.’

    그래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가 굳이 겸직을 고집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작품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작가 활동에 집중하는 것이 좋지 않나요?” 그는 겸직하는 이유를 그의 첫 작품인 ‘블랙홀’을 빗대어 설명했다.

    “은하계에만 블랙홀이 있는 것이 아니죠.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와 조직도 하나의 거대한 블랙홀이에요. 우리는 자기 자신도 모르게 거대한 블랙홀에 빠져들고 있는 겁니다. 경찰도 하나의 조직이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활동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죠. 조직에 속해 있는 것 자체가 영감을 얻고 작품활동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죠.”

    이 화백의 정년은 6년이 남았다. 그는 “순찰할 때 주민들이 자신을 알아보고 악수를 청할 때 정말 기분이 좋다”며 “공무는 끝까지 한다”고 말했다.

    그의 바람은 자신의 이름을 딴 자그마한 미술관을 거제에 짓는 것이다. 더불어 더 큰 포부도 전했다. “이 땅에 살아가는 한, 나의 테어링 아트로 세계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으면 좋겠어요.”

    그와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그가 걸어온 경찰관으로의 삶과 작가로서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페이스북에 남긴 글처럼.

    ‘하루는 경찰관의 길. 또 다른 하루는 현대미술 작가의 길. 나는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 오늘도 난 순찰차를 타고 사건사고 현장을 누비고 다닌다.’

    김용훈 기자 yh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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