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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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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 (3) 양돈업자 된 전직 경찰 방원식씨

[창간기획] 100세 시대, 은퇴자에게 길을 묻다
은퇴 전 20년 준비했더니 은퇴 후 꿈 이뤄지더라
민중의 지팡이에서 돼지 4000마리 주인으로

  • 기사입력 : 2018-04-02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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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후준비를 하지 않으면 말년이 고생스러울 수 있다. 젊었을 때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대부분 당장 먹고살기 빠듯해 은퇴에 대한 설계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이 은퇴 이후 모아둔 돈이나 연금에 의존해 노후를 맞이하지만, 풍족한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엔 빠듯한 게 현실이다. 이것저것 급하게 도전하다 실패를 겪고 빈곤층으로 전락해 버리는 경우도 상당하다. 미리 준비한다면 노후의 공포를 떨쳐낼 수 있다. 더욱 은퇴 이후의 삶이 제대로 설계돼 있다면 누구보다 더 당당한 삶을 살 수 있다.

    방원식(63·김해시 구산동)씨는 지난 2011년 10월 김해중부경찰서 대동파출소장직을 끝으로 30년간 몸담았던 경찰직에서 물러났다. 방씨는 지난 1981년 경찰시험에 합격해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했다. 정보과와 경리계 등을 거치면서 경위까지 승진해 국민의 신뢰를 받는 경찰로서 한 동네의 치안을 통솔하는 자리까지 올랐지만 정년을 4년여 앞두고 명예퇴직을 택해 경감으로 경찰생활을 마쳤다. 방씨에겐 갑작스러운 퇴직이 아닌 기다려온 순간이었다. 그가 자진해서 경찰 옷을 벗은 데는 그만큼 그의 손이 절실한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은 다소 뜬금없을 수 있지만 김해시 한림면에 있는 한 돼지농장이다. 한림면에 2600여평 토지 규모로 현대화시설을 갖추고 돼지 4000여 마리를 키우는 이 돼지농장이 그가 마련한 은퇴 대비책이자 가족들의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그가 경찰직을 하면서 돈을 많이 벌어 대규모 돼지농장을 인수하거나 사업에 뛰어든 것은 아니었다. 이미 20여 년 전 은퇴를 꿈꾸며 마련했던 돼지 170여 마리의 작은 농장을 아내의 헌신을 바탕으로 대규모의 돼지농장으로 몸집을 키워 왔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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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원식씨가 축사에서 돼지를 안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방씨는 30년간 경찰로 일하다가 지난 2011년 명예퇴직 후 지금은 돼지 4000마리를 키우는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방씨는 돼지 농장주이자 성공한 사업가로 변신했다. 방씨의 돼지농장에서는 현재 매달 500~600마리의 돼지를 출하하며 25억원이 넘는 연매출을 올리고 있다. 물론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고 산전수전을 다 겪어야 했지만 진정한 인간 승리를 일궈낸 것이다.

    방씨가 경찰이 된 배경은 아이러니하게도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된 직장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방씨는 “중학교를 다니면서 한 해 휴학했고, 고등학교 올라갈 때도 직접 돈을 벌어 간다고 한 해 늦게 입학했다. 대학도 못 가고 방직공장으로 취업했다가 얼마 안 돼 군대에 다녀왔다. 그 당시는 1980년대 초반으로 사회가 어수선해 취직도 쉽지 않아 노후가 보장되는 안정적인 경찰이 되자고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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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원식씨가 축사에서 돼지를 안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승권 기자/

    방씨는 “순경으로 처음 거제에서 몇 개월 근무하고 다시 고향이나 다름없는 김해로 돌아왔다. 현 김해중부경찰서(김해경찰서) 경리계에서 회계업무를 맡다가 교통순찰대 사이카로 외곽도로에서 과속이나 신호위반 등 단속업무도 했다. 정보과에서 학원담당으로 대학생들의 데모 시위를 담당하기도 했고, 회계 등을 다루는 막중한 자리인 경리 계장을 오래 했다”고 덧붙였다.

    방씨가 만일 그때 ‘은퇴 이후의 꿈’을 꾸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모습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방씨는 “사실 빨리 그만두고 싶었다”며 “제복사회가 위계질서가 뚜렷한 점도 있겠지만, 여느 조직사회가 그렇듯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겪는 고충들이 있지 않나. 상사를 잘못 만나면 머리 아프고 이해하기 힘든 업무지시도 있고, 직장생활이 힘들지 않나”고 말했다. 특히 “경찰이 된 이후 아내를 만나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아 아옹다옹 살았지만 봉급이 얼마나 됐겠나. 맞벌이해서 자식들 겨우 키우고 먹고살았다”며 “그러던 중에 돼지농장을 운영하던 친구로부터 고생스럽더라도 돈도 되고 보람도 있다는 조언을 듣고 돼지를 한번 키워보고 싶었다”고 했다.

    방씨는 결심을 행동으로 옮겼다. 지난 1991년 현 농장의 출발점이자 일부분인 토지 400여평 규모로 170여 마리의 돼지를 키우던 재래식 돈사를 인수했다. 당시 땅을 사면서 대출도 받고, 있는 돈 없는 돈을 다 끌어모아 1억원의 거금을 투자해 돼지사육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가 당장 직장을 그만둘 수는 없었지만, 어렸을 적 집안에서 가축을 키우는 것을 보고 자란 아내가 흔쾌히 돼지농장을 운영하겠다며 거들고 나선 것이었다. 이후 직접 돼지들에게 먹이를 주고 분뇨를 삽으로 치우고 지극정성으로 돼지들을 돌본 아내의 헌신과 그의 조력에 힘입어 돼지 농장의 규모는 날로 커졌다. 돼지를 키워 번 돈으로 주변 땅을 사 농장을 넓히면서 돌봐야 할 돼지의 수도 날로 늘었다. 2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처음 600평에 불과하던 땅은 2600여평으로, 170마리에 불과하던 돼지의 수는 4000마리 규모로 늘었다.

    방씨는 “농장의 규모가 날로 커지는 데 빨리 퇴직할 수 없었던 이유는 경찰로서도 떳떳하게 책임감을 갖고 평생을 일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더는 은퇴를 미룰 수가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며 “그동안 아내의 고생을 너무나 잘 알기에, 우리 농장의 발전을 위해 꼭 해야 할 숙제가 있었다. 바로 축사시설 현대화사업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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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씨가 축사에서 손수레를 끌고 있다.


    그가 돼지농장의 시설부터 개선한 데는 그만한 사정이 있었다. 무엇보다 돼지농장의 악취 문제로 그간 주민들의 민원이나 갈등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방씨는 “지금도 대부분 돼지농장이 재래식 축사인데, 재래식은 아무리 노력해도 악취가 난다. 우리 농장 인근에 52가구가 사는 마을이 있어 죄인으로 살았다”며 “축사를 현대화한다고 했을 때도 주민들이 시위를 열고 극도로 반대했을 정도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의 지원 사업으로 자부담과 분할상환으로 25억원 상당을 투자해 시설을 현대화했다.

    먹이를 주거나 분뇨를 치우는 전자동시스템을 완비하고 악취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한 순환시스템도 도입했다. 지역 양돈장 최초로 축산폐수를 자체 정화 처리해 방류하면서 환경문제도 해결했다”며 “주촌과 한림, 생림 등 지역 축산농가를 대상으로 교육도 하러 다닐 정도로 벤치마킹할 모범농장이 됐다. 지금은 돼지 5000마리를 사육할 계획으로 축사 증축 공사를 하고 있지만 주민들의 반발도 없다”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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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씨는 이제 농장의 운영이 안정적으로 접어들자, 그간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둘 다시 시작하고 있다. 인생 2막을 못 펼쳤던 꿈들을 이루는 것부터 시작한 것이다. 방씨는 “가정형편으로 대학을 나오지 못한 한을 풀고 싶어 대학을 졸업했다.

    경찰로 근무 중이던 1998년 인제대 경영통상학과에 야간 만학도로 입학했으나 도저히 학업을 계속할 수 없어 2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했는데, 재입학해서 졸업했다”고 말했다. 또 “돼지농가의 발전을 위해 경력을 살려 현재 부경양돈농협의 감사도 맡고 있다. 부경양돈농협은 전국에서 두 번째로 큰 양돈전문 농협인 데다가 신성장 먹거리 사업으로 축산물종합유통센터도 추진 중이라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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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씨는 아내와 함께 일군 돼지농장을 아들에게 가업으로 물려줄 날도 기다리고 있다. 방씨는 “우리 농장 정도면 손에 꼽히는 대기업이라 말하고 싶다.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기도 어렵고 팔지도 않겠지만, 아들이 작년부터 공군 옷도 벗고 가업을 물려받기 위해 농장에서 일을 배우고 있다. 아들과 직원들이 일을 잘해주고는 있지만 한 10년 정도는 현업에서 일을 가르쳐야 할 것 같다”며 “농장 주변에 그리 크지 않은 전원주택도 짓고 있다. 작은 방 하나는 찜질방으로 마련할 계획이다. 노후에는 여유 있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우리 가족이 평생 가꾸는 농장을 지켜보며 살려고 한다”고 했다.

    또 “은퇴 이후 준비했다면 꿈도 못 꿨을 것이다. 요즘은 돼지농장 허가도 받기 힘든데, 하마터면 돼지를 한번 키워보지도 못할 뻔했다. 봉급쟁이들이 노후를 준비할 기회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기회를 잡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고 본다”며 “먹고사는 데 지장만 없도록 행복하게 살려고 한다. 버는 돈은 허투루 쓰지 않고 농장 시설에 계속 투자해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더불어 행복하게 살려고 한다”고 했다.

    김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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