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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풍수지리]후손을 위한 가족묘원 조성

  • 기사입력 : 2018-04-0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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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양군의 중심에 위치한 개평마을은 ‘좌안동 우함양’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유학자를 배출한 영남지역의 대표적인 선비마을로 조선조 오현(五賢) 중 한 분인 일두 정여창 선생의 고향이다. 정여창 고택으로 알려진 현재의 집은 그가 죽은 후, 선조 무렵에 건축된 것이다. 경남 지방의 대표적인 건축물로서 솟을대문, 사랑채, 안사랑채, 중문간채, 안채, 아래채, 별채, 사당 등의 공간구획 배치가 가장 최적화돼 있어서 당시의 생활상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쓰이고 있다.

    솟을대문에는 5개의 충신·효자의 정려패가 걸려 있어 드나들 때마다 항시 숙연한 마음을 갖게 한다. 집 뒤의 주산은 거북등 형상으로 유정하게 서 있다. 솟을대문과 중문은 일직선으로 돼 있지만 중문의 방향을 비스듬히 틀어서 안사랑채가 흉풍을 바로 맞지 않도록 했다.

    사랑채는 툇마루 일부를 높여 누각의 난간처럼 둘렀다. 흥미로운 것은 바닥이 높은 안채와 수평을 맞추기 위해 사랑채를 높은 축대로 쌓아서 안배를 했다는 점과 적절한 공간배치로 인해 마당에는 늘 햇빛이 머문다는 점이다. 또한 정여창 고택의 사랑채 앞에 노거송(老巨松)과 함께 조성한 석가산(石假山·정원 따위에 돌을 모아 쌓아서 조그마하게 만든 산)은 유수한 풍취가 감돌 뿐만 아니라 흉풍과 살기(殺氣)를 막아주는 비보의 역할도 동시에 하고 있다.


    성리학의 대가로 알려진 정여창의 묘소는 함양군 수동면에 위치하고 있다. 주산(뒷산)은 거북등과 같은 ‘금성사’로 묘소를 향해 뻗어 있는 용맥(산줄기)에 끊임없이 생기(生氣)를 전달함으로써 튼실한 용맥이 형성됐는데, 이러한 용맥이 상하로 기복(起伏·지세가 높아졌다 낮아졌다 함)을 하고 좌우로 요동을 치면서 묘소에 도달했다. 묘소 앞의 안산(앞산)은 ‘문필봉(文筆峰)’으로 대학자의 거침없이 글을 휘갈기는 붓끝을 보는 듯하다. 좌향은 인좌신향(寅坐申向)으로 남서향이다.

    얼마 전 김해시 진례면 모처에 땅을 매입한 이가 분산된 부친(모친 생존)부터 고조부모의 묘소까지 함께 안치할 목적으로 광중(壙中·무덤의 구덩이)의 위치 선정을 의뢰했다. 요즘은 흩어진 무덤을 화장(火葬)하거나 한곳으로 이장(移葬)해 ‘가족묘원’을 조성하는 것이 장례문화의 일반적인 추세이다. 60~70대의 아버지들은 그들 생전에 흩어진 무덤을 모음으로써 후손이 조상의 무덤으로 인해 힘들지 않기를 바란다. 의뢰인이 매입한 땅은 주산으로부터 산줄기가 뻗어내려 온 ‘근본’을 갖춘 곳이긴 하나 ‘일맥일혈(一脈一穴)’이라 하여 하나의 산줄기에 혈처(穴處·좋은 자리)는 한 곳뿐이며, 다른 곳은 무득무해(無得無害)한 곳으로 득(得)도 없고 해(害)도 없지만 후손의 노력 여하에 따라 행불행이 결정된다. 고조부모와 증조부모는 이미 흙으로 돌아간 상태여서 약간 올려 자리를 잡았고 조부모는 지기(地氣·땅 기운)가 다소 머물러 있는 곳으로 잡았으며 부친의 묘소는 생기가 뭉쳐 있는 자리를 잡아서 안치하도록 했다. 토질이 황토여서 광중에 물이 들어가면 빠지지 않기 때문에 봉분 조성의 방법을 알려주고 둘레돌은 가급적 하지 않도록 했으며, 상하의 묘소 간격이 좁아서 부친 묘소의 앞쪽에 대표 상석만 두도록 했다. 묘소의 좌우측에 있는 청룡과 백호가 부실해서 양측에서 부는 세찬 ‘바람길’을 돌리기 위해 ‘망주석’을 두도록 했으며 묘소의 외곽을 둘러 바람과 물의 침범을 막도록 나성(羅城·흙 둔덕, 월령)을 쌓도록 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신을 모시며 사는 여인이 있었다. 6년 전에 집을 사서 살면서부터 몸이 조금씩 아프다가 초기 암 진단을 받고 급기야 하던 업(業)을 일시 접었다 한다. 감정한 집은 ‘흉한 파’가 계속 올라오는 ‘나쁜 터’에 살고 있었다. 이럴 때는 집을 옮기든지 계속 거주하려면 바닥과 벽에 천연목재를 두르면 어느 정도 살기는 잡을 수 있다. 여인이 옮기고자 매입한 산 아래 터의 감정 결과 둥근 석벽은 ‘기도발’을 받는 곳이며 3필지의 터에서 아래 필지는 보통 기운의 터였으나 도로살로 인한 기(氣)의 교란이 있고, 중간 필지는 기운이 나쁜 터였으며 위의 필지가 지기도 좋고 무난한 터여서 집을 짓도록 권했다.

    주재민 (화산풍수지리연구소장)

    (화산풍수·수맥·작명연구원 055-297-3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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