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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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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312) 제22화 거상의 나라 72

“나 중국 구경 한번 시켜줘”

  • 기사입력 : 2018-04-0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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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빗소리가 들려서 좋았다. 창으로 빗줄기가 추적대는 주택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홍인숙의 집은 북가좌동과 경계를 이루는 응암동에 있다. 봄이 오려고 빗줄기가 뿌리는 것일까. 빗줄기를 보자 가슴까지 촉촉하게 젖어 오는 기분이었다.

    “옥탑방인데 어때?”

    홍인숙이 빗물을 털면서 코트를 벗었다.

    “비가 오는 걸 볼 수 있어서 좋네.”

    김진호는 창가에 섰다. 옥탑방은 거실과 욕실, 그리고 방 하나로 이루어져 있다. 방에서는 여자의 방 특유의 냄새가 풍겼다.

    “배고파?”

    홍인숙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담배 피워도 돼?”

    “그럼.”

    홍인숙이 창문을 조금 열고 재떨이를 창틀에 올려놓았다. 주택가는 어둠에 둘러싸여 있고 집집마다 불이 켜져 있다. 김진호는 담배에 불을 붙여 연기를 깊이 빨아들였다.

    “후우.”

    연기를 내뿜자 바깥으로 푸르게 흩어져 나갔다. 홍인숙이 김진호의 뒤에 와서 백허그를 했다. 풍만한 가슴을 등에 바짝 밀착시켰다.

    “나 중국 구경 한번 시켜줘.”

    “지금은 사업을 하기에 바빠. 나중에 시켜 줄게.”

    “나중에 보자는 사람 믿을 수 없더라.”

    “정 사장하고는 왜 헤어졌어?”

    김진호는 화제를 바꾸었다. 중국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제는 사업을 해야 했다. 그들에게 한가하게 중국 구경을 시켜줄 시간이 없었다.

    “정 사장은 여기에 살면서도 마음은 중국에 가 있었어. 중국에 있는 젊은 부인이 좋은 모양이야.”

    “그렇지는 않을 거야.”

    “중국에 젊은 부인이 있다면서?”

    “정 사장 같은 사람은 새롭고 신기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야. 젊은 부인이 아니라 떠돌아야 돼. 노마드지.”

    “노마드?”

    “유목민….”

    김진호 역시 스스로를 노마드라고 생각했다. 김진호는 중국을 떠날 수 없었다. 서울에 오면 중국이 그립고 중국에 있으면 서울이 그리웠다.

    “중국에서 사업이 잘되었으면 좋겠다.”

    “잘할 거야.”

    “언제 중국에 들어가?”

    “연휴 끝나고 이틀 지나서.”

    의류사업을 하는 동대문 의류상들과 계약할 일이 많았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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