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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1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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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북한 노동당 청년 간부가 본 6·25전쟁
실존인물 정찬우 삶 바탕으로 전쟁의 참상 담아

  • 기사입력 : 2018-04-0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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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0년 7월 초 인민군이 파죽지세로 남하하던 시기, 실존인물이었던 정찬우는 노동당 교육위원으로 발탁돼 남한 영남지방으로 파견된다.

    당시 그의 나이 22세, 김일성대학 역사학과를 갓 졸업하고 교사로 발령받은 직후였다. 전남 고창에서 출생했지만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만주로 이주한 정찬우는 금주성 일대에서 이름난 수재로, 국립사범대학에 남들보다 2년 일찍 들어갈 정도로 영민했다. 그는 또한 남다른 정의감으로 조선독립에 투신해 조선의용군으로 활동하며 능력을 인정받아 승진을 거듭했지만, 학문에 대한 열망에 1947년 이북으로 귀국, 장학생으로 김일성대학 역사학과에 진학한 것이다.

    틈틈이 써둔 소설로 공모전에 당선한 소설가이기도 했다. 그의 인생이 한순간에 뒤집어진 것은 6·25전쟁에 참가하면서부터였다. 김일성의 직인이 찍힌 임명장을 받고 군복으로 갈아입은 뒤 남쪽으로 내려와 목격한 전선의 상황은 북에서 듣던 승전보와는 전혀 달랐다.

    서울과 대전에서 맞닥뜨린 제트기의 기총소사와 소이탄 폭격에 생사의 고비를 넘기는 것은 예삿일이 됐고, 낙동강 전선에서 북한군이 유엔 연합군에 궤멸되다시피 한 이후로는 빨치산 신세로 산속에 은둔하며 하루하루를 견디는 신세가 된다.

    결국 포로로 잡힌 정찬우는 포로수용소에 수감되고 전범재판을 통해 남한에서 10년의 세월을 복역한다. 정찬우는 노동당 간부라는 출신 때문에 수용소와 감옥에서 빨갱이로 취급받고 공산주의 사상을 교도소 내에 전파한다는 누명을 쓴 채 고난을 겪기도 하지만, 마침내 사면 받아 고향인 전남 고창으로 돌아간다.

    북한 엘리트로 전쟁에 참여했다가 남한에서 전향한 정찬우는 남과 북 그 어디에도 소속된 사람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쟁에 대한 그의 증언은 보다 객관적이며, 이 소설은 초국적의 정찬우가 바라보는 전쟁의 풍경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그가 포착한 전쟁의 단면은 전쟁을 주도한 남·북한 지도세력의 이념과는 괴리돼 전선에서 동족 간의 전쟁을 강요당한 사람들 간의 갈등과 무자비한 폭력에 다름 없다. 평화시대라면 지극히 평범했을 사람들이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단지 살아남기 위해 추악한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만, 정찬우는 생사를 넘나드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총 한 발 쏘지 않고 전선에서 여러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등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고난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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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욱 묵직한 감동을 주는 것은 사람의 목숨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라지는 전쟁을 통과하고, 비참한 포로수용소 생활을 몸으로 견뎌내는 정찬우의 ‘살아남는’ 삶 자체다. 기어이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정찬우의 모습은 “극한 상황이기에 오히려 더 빛나는 인간의 강인한 생명력”을 핍진하게 보여주고, 우리로 하여금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의 감각을 경험하게”(추천사, 현기영) 한다.

    불행한 시대에 태어난 한 ‘인간주의자’라고밖에 할 수 없을 정찬우의 일대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옳은 전쟁이나 필요한 전쟁이란 없다는 교훈을 간직한다. 전쟁에서 파생된 갈등과 대립이 여전히 우리 사회를 맴돌고 있는 지금,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는 “‘잊힌 전쟁’(forgotten war)의 한복판으로 들어가”(추천사, 조해진) 건져올린 증언이자 우리를 향한 역설적인 당부다. 안재성 지음, 창비 펴냄, 1만4500원.

    양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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