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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死六臣)의 절의를 칭송함- 변종현(경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 기사입력 : 2018-04-0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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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충(忠)과 효(孝)와 열(烈)을 중요한 덕목으로 여겼다. 사람이 태어나서 부모님께는 효를 다하고, 개인이 속한 나라에는 충성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여인은 시집을 가서 남편을 잘 섬기고 절개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 초기 저헌(樗軒) 이석형(李石亨, 1415∼1477)은 사육신(死六臣)의 절의(節義)를 칭송하는 시를 남겨 정치적으로 위기를 겪기도 했다. 이석형은 세종 때 문과에 장원급제했고, 춘추관 직제학으로 재직 시 정인지 등과 고려사 편찬에 참여했다. 1453년 계유정난으로 세조가 정권을 장악하자, 정인지·신숙주 등과 더불어 훈구파의 대표적 인물로 부상했다. 전라도관찰사로 재직 중 1456년 6월 사육신사건이 일어나자, 사육신의 절의를 칭송하는 시를 익산 동헌에 남겼다. 그는 세조에 의해 예조참의에 오른 뒤 대사헌을 거쳐 팔도체찰사를 지내기도 했다. 그가 지은 <詠懷(영회), 회포를 읊조림)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虞時二女竹(우시이녀죽) 순임금 때는 두 여인의 대나무가 있었고/秦日大夫松(진일대부송) 진나라 때는 대부의 소나무가 있었지/縱有榮枯異(종유영고이) 비록 영화롭고 형편없는 차이 있지마는/寧爲冷熱容(영위냉열용) 어찌 차갑고 따스한 모습 지을거나

    이 시는 중국의 고사(故事)를 동원해 당대의 사육신 사건을 풍자하고 있다. 기구에서는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의 절개를 칭송하고 있다. 우(虞)는 순임금 때 나라 이름인데, 순임금의 두 비인 아황과 여영은 순임금이 죽자 피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다가 소상강에 빠져 죽었는데, 두 여인의 한이 소상강가의 반죽(斑竹)에 아롱져 남아있게 됐다고 한다.

    승구에서는 진시황 때 대부송(大夫松)을 이녀죽(二女竹)에 대비시켰다. 진시황이 태산에 봉선제(封禪祭)를 지내러 갔다가 갑자기 소낙비를 맞게 돼, 다섯 그루의 소나무 밑에서 비를 피했다. 그후 다섯 그루의 소나무를 ‘오대부(五大夫)’로 봉했다. 전구와 결구에서는 현재는 비록 영화롭고 형편없는 차이가 있지마는 차갑고 따스한 모습을 지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여기서 영화로운 존재는 대부의 소나무이고, 형편없는 존재는 두 여인의 대나무이다.

    현재 대부의 소나무는 세조의 공신들인 한명회, 신숙주, 권람 등을 지칭하고 있고, 두 여인의 소나무는 사육신을 지칭하고 있다. 따라서 사육신들은 절의를 지켜 두 여인의 대나무처럼 현재는 쓸쓸하고 형편없는 존재가 돼 버렸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아황과 여영처럼 절개를 지킨 인물로 추앙받을 수 있을 것이란 것이다.

    이 시가 조정에 알려져 대간에서 시의 뜻을 국문하자고 청하니, 세조는 이 시를 보고 말하길, ‘시인의 뜻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고 해 불문에 부쳤다.

    평소 성삼문과 가깝게 지냈던 이석형이었기에 이 시를 지으면서 얼마만큼 벗의 죽음을 애도하였을지 짐작이 된다.

    변종현 (경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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