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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본] 제주 4·3 현장을 다녀와서

  • 기사입력 : 2018-04-18 14:4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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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평화공원내 행방불명자 위패.


    ◆11세 소녀 홍춘호, 81세 문화해설사 홍춘호

    눈을 뜨나 감으나 차이가 없는 어둠이었다. 살을 맞대고 붙어앉은 옆 사람의 숨소리가 아니면 내가 숨을 쉬는 건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숨막히는 어둠 속에서 11살 소녀 춘호는 동굴 초입부터 지나온 길을 자꾸만 되짚어 보았다. 마치 조롱박 속으로 빨려 들어오는 것만 같았던 그 날을 잊지 않으려는 나름의 노력이었다. "언제 나갈 수 있을까… 나갈 수 있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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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평화공원 내 있는 유해 발굴터 모형.


    깊은 동굴 속까지 파고드는 바람은 빛은 데리고 오지 못했다. 동굴 벽에 매달린 물을 핥아먹어봤지만 갈증은 가시지 않았다. 갈증은 허기를 불렀고 허기는 추위를 더했다.

    "나가서 토벌대에 죽어 솔개밥이 되느니 여기서 부모, 가족 곁에서 죽는 게 낫다"
    춘호는 이웃 아저씨의 말에 동의할 수도, 동의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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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해설사로 활동중인 홍춘호 할머니.

    사실 춘호는 죽고사는 게 무엇인지 잘 몰랐지만, 딱히 묻지도 않았다. 이미 삶과 죽음의 경계를 여러 번 넘나들었으며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삶 그 자체가 목적이었고, 이미 죽은 사람들은 왜 죽어야 하는지 이유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목숨을 뺏겼기 때문이다.

    물을 수 없는 것도 있었다. 누가 마을을 불태우고 이웃들을 죽였는지, 왜 그들에게서 도망다녀야 하는지, 어째서 죄없는 동생들이 춥고 배고픔에 떨다 죽었어야 했는지, 왜 아버지는 죽은 동생들을 제대로 묻어주지 못했는지, 왜 어머니는 자식을 잃고도 소리내 울지 못했는지….

    물음표는 넘쳤지만 '생존'이라는 두 글자 아래 모든 것은 부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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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광리 무등이왓마을 사람들이 숨어지낸 넓궤.


    4·3 70주년을 맞아 각 지역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4.3 바로알기' 일정의 하나로 2018년 4월 2일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 큰 넓궤 속에 들어가게 됐다. 좁은 동굴을 기어 동광리 무등이왓 마을 사람 120명이 토벌대를 피해 40일간 숨어지냈던 그곳에 도달하니 11살 소녀 춘호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넓궤에 들어가기 전 들렀던 무등이왓에서 만난 제주 4·3 생존자이자 희생자 유족인 홍춘호(81) 할머니가 70년 전 소녀 춘호다. 그는 기억 속에 잠재워놓고 싶은 끔찍한 그 옛일을, 기억해야 할 역사로 후대에 전달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문화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웃사람들은 경찰이 안내를 하겠다는 말에 불려나가 영문도 모르고 총에 맞아 죽었어. 죽을까봐 무서워서 밤에만 집에 가 자고 숨어다녔는데, 토벌대들이 집과 마을에 불을 질러 버렸지. 불도 없이 컴컴하던 제주가 불바다가 된 것처럼 붉었어. 미처 도망가지 못하고 마을에 숨어있던 사람들이 있던 곳에 토벌대가 불을 질렀는데 도망나오는 어른, 아이를 죽창으로 찔러 죽였어."
    "마을사람 2/3가 사라졌지. 한 가족 전체가 몰살 당하기도 하고 한 집에 한 명이라도 안 죽은 집이 없었지. 살기 좋던 마을이 아주 절단이 났어."

    1948년 10월부터 시작된 이른바 '초토화작전'으로 홍 할머니의 고향인 동광리 무등이왓은 이름만 남은 마을이 돼버렸다. 130명이 넘었던 주민 대부분은 토벌대에 의해 잔혹하게 학살 당했다. 살아남은 마을 사람들은 끔찍한 기억을 잊고 싶다며 돌아오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 마을에서 살겠다는 사람 또한 없었다.
    홍 할머니는 3살, 5살, 8살짜리 남동생을 잃고 계엄령이 해제된 후 부모를 잇따라 여의었다. 13살 소녀가 젖먹이 동생과 살아가기에 고난한 시절이었다.

    "호된 시절이 지나고 나니 먹고살기 힘들었지. 밥도 없고 찬도 없었어. 거친 밥에 소금 놓고 끼니를 떼웠지. 배고픈 것도 서러운데 폭도라고 사람들과 어울릴 수도 없었어. 참 너무 힘들게 살았지."

    소름 돋을 만큼 무섭고 괴로웠던 과거를 우리 앞에 담담하게 꺼내놓던 홍춘호 할머니는 그래도 살아야 하니깐 살았다고, 기억해야 하니깐 이 자리에 서 있다고 말했다. "모진 세월 살아내느라 고생하셨노라" 위로를 전하니 밝았던 할머니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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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춘호 할머니와 포옹하는 기자.

    ◆4·3을 아시나요

    꿈 많았던 11살 소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고 굴곡지게 만든, 제주 4·3은 대체 무엇일까.

    많은 제주 사람이 왜 죽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억울하게 죽었다는데…. 무엇이 억울한지, 실제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잘 모른다.

    진상조사위에 의해 알려진 제주 4·3의 전말은 이렇다.

    일본으로부터 해방 직후 먹고사는 게 고되었던 그 때, 1947년 제28주년 3·1절을 기념하기 위해 제주읍 관덕정 앞에 많은 제주사람이 모였다. 말을 탄 경찰이 어린아이를 치는 일이 발생했고 제대로 조치하지 않은 경찰에 분노한 군중들이 항의하며 시위로 확산됐다. 경찰의 발포로 민간인 6명이 죽고 8명이 부상당했다. 경찰의 과잉진압에 제주도민들은 거세게 항의했고 급기야 3월 10일 전도민이 참가하는 총파업이 이뤄졌다. 미군정 경찰은 제주를 빨갱이섬으로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38선 이남에서만 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헌법을 제정하는데 필요한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예정된 가운데 4월 3일 제주 남로당원들은 이에 반대하기 위해 제주 내 24개 경찰지서 중 12개를 습격, 14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5·10선거일에는 제주도민들이 투표를 거부했다. 하지만 끝내 이승만 정부는 출범했고 제주에서는 토벌이 시작됐다. 이른바 초토화작전은 10월 17일을 기해 해안선에서 5km 이상 지역을 적성구역으로 정하고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무조건, 무조건 사살하겠다는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제주 중산간마을 대부분이 불에 타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무자비하게 학살당했다. 1949년 봄까지 이렇게 희생된 사람은 3만명으로 추산된다. 당시 제주도민 10명 중 1명이 4·3으로 죽임을 당했다. 제주도민 사이에도 생각이나 입장이 다 다르지만, 막 나라를 되찾아 온 나라가 혼란스럽던 그 때 좌와 우, 이념이란 굴레를 씌워 국가가 국민을 대상으로 공권력을 휘둘러 인권을 탄압하고 목숨마저 빼앗다는 사실은 참혹하다. 더 안타까운 것은 아직 4·3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도 많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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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유적지를 둘러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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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유적지를 둘러보고 있다.


    ◆슬픔에서 기억으로, 기억에서 내일로… 4·3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

    올해로 제주 4·3은 70주년을 맞았다. 시절 탓에 수십년간 4·3은 사람들 입 밖에 나올 수 없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이 시작되면서 4·3진상규명운동이 본격화됐다. 1993년 4·3특별법 제정 청원에 이어 1995년 제주도의회 4·3특별위원회가 피해실태조사보고서를 발간했다. 50년도 더 지난 2000년 김대중 정권에서 4·3특별법을 제정됐고 이와 함께 진상보고서 확정, 추모기념일 지정, 평화공원 조성, 생계비 지원, 유해발굴 및 유적지 복원, 추가 진상규명과 기념사업 등이 채택돼 순차적으로 진행돼 오고 있다.

    "과거 불운한 일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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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0주년 추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추념사를 하고 있다.


    지난 3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0주년 추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4·3이 분명한 역사의 사실임을 선언하고 진상조사와 명예회복이 중단되는 일 없이 완벽하게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현장에 있던 모두가 한마음으로 박수를 보냈다.



    한 번쯤은 제주를 찾을 것이다. 제주관문인 제주공항에서는 400구에 가까운 희생자 유골이 발굴됐으며 얼마나 더 묻혀있을지 모르는 희생자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간 20만명, 제주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들리는 4·3평화공원에는 희생자 1만4095위의 위패가 봉안돼 있으며 행방불명 희생자 표석 3884기가 세워져 있다.

    4·3을 모른다고 해서 제주에 갈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진짜 제주를 마주하고 싶다면 4·3을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김희진 기자 likesky7@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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