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06일 (금)
전체메뉴

봄날 - 신경림

  • 기사입력 : 2018-04-19 07:00:00
  •   
  • 메인이미지


    아흔의 어머니와 일흔의 딸이

    늙은 소나무 아래서

    빈대떡을 굽고 소주를 판다



    벚꽃잎이 날아와 앉고

    저녁놀 비낀 냇물에서 처녀들

    벌겋게 단 볼을 식히고 있다



    벚꽃 무더기를 비집으며

    늙은 소나무 가지 사이로

    하얀 달이 뜨고

    아흔의 어머니와 일흔이 딸이



    빈대떡을 굽고 소주를 파는

    삶의 마지막 고살



    북한산 어귀

    온 산에 풋내 가득한 봄날



    처녀들 웃음소리 가득한 봄날

    ☞ 허리가 반으로 접힌 아흔의 할머니가 종이박스 몇 개 담긴 유모차에 기대어 봄꽃 흐드러진 골목을 기웃기웃 가고 있다.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집에 가만히 있으면 다리가 더 아파서 이런다고, 돈이 궁해서 이러는 게 아니라고, 늙을 줄 모르는 생의 애살을 구시렁구시렁 지청구하며 가고 있다. 개똥밭에 뒹굴어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는데, 일흔이든 아흔이든 폐지를 줍든 빈대떡을 굽든 소주를 팔든, 누가 저 도무지 늙지 않는 생의 애살에 대해 군말을 보탤 것인가! 하물며 ‘온 산에 풋내 가득한 봄날’을 두고 ‘처녀들의 웃음소리 가득한 봄날’을 두고 한 줌 흙밥이 되어 사라지고 싶겠는가! 그러므로 봄날 모든 죽음은 요절이 된다. 조은길 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