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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그래도 막(幕)은 오른다- 이상용(연극인)

  • 기사입력 : 2018-04-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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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의 역사는 유구하다. 고대 희랍 비극의 3대 작가인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이 연극의 모태이기 때문이고, 영국의 셰익스피어와 프랑스의 몰리에르로 대표되는 중세연극과, 노르웨이의 입센, 러시아의 체호프, 스웨덴의 스트린드베리 같은 근대연극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역사가 면면히 이어져 오기에 하는 말이다. 어디 그뿐이랴. 연극의 중요성도 함께 인식되어 왔음이니 바로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했을 정도로 영국은 일찍부터 연극의 중요성을 간파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연극의 역사는 어떠한가. 다른 지역은 건너뛰고 경남연극만 보자. 한국연극의 태두라 불리는 동랑(東郞) 유치진이 통영 출신이고 그보다 3살 아래인 온재(溫齋) 이광래가 마산 출신이다. 경남 출신인 동랑과 온재가 한국연극을 개척했던 주인공이기에 경남연극인들의 자부심은 남다르다. 어디 동랑과 온재뿐이랴. 시인으로 알려진 파성(巴城) 설창수와 소설가로 알려진 나림 (那林) 이병주도 한 시기 경남에서 연극을 했던 인물들이다.

    이처럼 필자가 연극의 역사와 중요성을 언급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최근에 불어 닥친 ‘미투(Me Too)’ 운동 때문이다. 듣기에도 생소한 명칭을 가진 그 운동이 안 그래도 어려운 지역연극계에 치명상을 입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고군분투해 온 경남연극인들이 그나마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왔으나, 느닷없이 ‘미투’ 운동의 중심인물로 모(某) 연극인이 지목되는 통에 아무 죄 없는 경남연극인들만 도매금으로 매도당할 곤경에 처해진 것이다.

    명색이 마산에서 50여 년간 연극을 해 오는 필자조차도 쥐구멍을 찾고 싶은 심정이니 다른 연극인들은 더 말해 무엇하리. 더구나 ‘미투’ 운동의 당사자로 거론된 사람은, 사실은 밀양 연극인이 아니라 부산과 서울에서 활동한 사람이기에 밀양 연극인들은 아무 영문도 모른 채 누명만 뒤집어쓰고 만 형국이다. 아니 밀양만이 아니라 전 경남연극인들이 같은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우물물을 더럽힌다’는 말이 딱 맞는 비유가 되고 만 것이다. 연극이란 신기루를 좇아 좌고우면하지 않고 오직 앞만 보고 달려온 순수한 경남연극인들에게 찬사는커녕 오명과 환멸과 자괴감만 안겨준, 경남연극인도 아니면서 경남연극의 단물만 빨아먹은 자에게 응징이 있을진저.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올바르게 돌아가는 법.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연극인 때문에 치명상을 입은 경남연극이 그런 여건 속에서도 관객들의 사랑을 변함없이 받고 있다는 사실이 그 방증이랄 수 있고, 지난 15일 막을 내린 금년도 경남연극제의 매진 사례가 그 단적인 예랄 수 있다.

    어디 연극하기 쉬운 때가 있었던가. 어디 연극인들이 대접받던 시기가 있었던가. 하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연극의 역사는 이어져 왔고 또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래도 막은 오른다’는 만고불변의 명언이 연극판에 존재하기에.

    이상용 (연극인)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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