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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 (5·끝) 시조창으로 재능 찾은 김윤태씨

[창간기획] 100세 시대, 은퇴자에게 길을 묻다
“한 곡조 뽑으니 은퇴 후 무료함이 즐거움 됐죠”
1963년부터 교직생활하다 2004년 은퇴

  • 기사입력 : 2018-04-23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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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후는 길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3.1세, 근로기준법상 정년인 60세를 은퇴연령으로 계산하면 퇴직자에겐 20여년의 노후가 남아 있게 된다.

    그런데 실제 노후 기간은 더욱 길다. 지난해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체감 은퇴 연령은 약 50세로 기대수명까지 계산하면 30여년의 노후를 보내야 한다. 노후가 긴 것은 기대수명이 길어진 탓도 있지만 심리적인 영향도 더해진다.

    누구에게나 지나온 세월보다 남은 세월이 길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은퇴 후 무엇을 시작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오랜 기간을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더욱 중요한 이유이다. 퇴직 후 오랜 삶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지난 19일 창원시 마산회원구 합성시장길 한 주택에 마련된 시조회관에서 김윤태(76)씨를 만났다.

    그는 은퇴 14년차인 고참(?) 은퇴자다. 시조회관은 시조창을 배우고 부르기 위한 연습공간으로 김씨가 매주 즐겨찾는 공간이다. 시조창은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인 시조시를 가사로 부르는 노래이다.

    “이곳에 들어오면 서로 맞절로 인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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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태(왼쪽)씨가 창원시 마산회원구 합성동 한 주택에 마련된 시조회관에서 회원들과 시조창을 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김씨와 더불어 시조창 회원들과 서로 맞절을 한 후 한 회원이 차를 내왔다. 시조회관은 당초 사무실 형태로 있었으나 재개발지역으로 허물리면서 회원 15명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주택에 임시 거처를 마련해 쓰고 있다. 회원 대부분은 60~70대로 김씨 같은 은퇴자들이 많아 서로 가족처럼 지낸다.

    김씨는 지난 2004년 칠원초등학교장을 마지막으로 41년 교직생활을 은퇴했다. 그는 교직을 천직으로 여겼다.

    “1963년에 교직을 시작한 후 41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겠더군요. 아이들이 좋았죠. 교사, 교감, 교장을 거치며 교육에 이바지한 것이 자랑스러웠어요.”

    하지만 퇴직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더군다나 당시 교원 정년은 65세에서 62세로 줄어든 때였다.

    “한참 더 일할 시기라고 생각했는데, 남은 세월을 생각하니 단축된 수년도 짧은 세월이 아니더군요. 학교를 떠나기 싫어 마지막날까지 출근했어요.”

    그는 퇴직이 실감나지 않았다. 두려운 것은 ‘무료함’이었다.

    김씨는 “퇴직 후 리듬을 깨지 않기 위해 출근시간에 맞춰 괜히 다른 곳으로 여기저기 다녔다가 퇴근시간에 집에 들어오곤 했다”고 말했다.

    은퇴한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단순히 집을 벗어나기 위해 마냥 여기저기 다니는 생활은 결국 무료함을 이기지 못했다.

    “마음을 다잡고 둘러보다가 주변에 각종 사회교육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취미생활과 전문성을 높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생각보다 많더군요.”

    그는 노래를 좋아했다. 중학생 시절엔 동네 콩쿠르에서 입상한 적도 있었다. 김씨는 “평소 노래를 좋아하지만 교직에 있을 때는 제대로 즐긴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은퇴 후 KBS 전국노래자랑에 출전한 것은 큰 경험이었다. 당시 동네 예선 600여명에서 14명 안에 뽑혔다. “내가 노래 부르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좋아했어요. 노래로 사람들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재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는 노인복지관에서 여러 프로그램을 수강하다 어느 날 한 강의실에서 시조창이 울려퍼지는 소리를 들었다. “한마디로 매료됐죠. 이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바로 들었어요.”

    그는 시조창에 대해 “흥겨운 가락 속에서 구슬프고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질 듯 끊어지는 추임새의 맛이 마음을 편안하고 여유롭게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시조창을 시작한 후 전국시조경창대회에 50회 출전해 40회를 입상했다. 평시조부·사설시조부·지름시조부·명인부·국창부 등 5개 부문에 장원을 수상할 만큼 6년 만에 빠른 속도로 국창 단계에 올랐다.

    그는 주변의 권유로 노인대학에서 노래 강사를 맡고 있다. 학생이면서도 강사로 활동하는 셈이다. 매월 2회 하는 그의 노래 강의에는 수강생이 한 반에 300여명이나 된다. 김씨는 “부르는 법부터 노랫말 배경에 대한 설명까지 강의를 한다”며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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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태씨가 시조창 악보를 보고 있다./김승권 기자/


    그는 바쁘다. 아침 5시 30분쯤 기상해 조깅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매주 월요일은 마산노인복지관에서 사회교육 관련 프로그램을 수강한다. 화요일과 목요일은 시조회관에 나와 시조창을 배우고 연습한다. 수요일은 하모니카 ‘멋진 인생’ 동호회 활동을 하고 금요일은 마산박물관에서 문화유산 관련 강의를 듣는다. 토요일은 함안에서 텃밭을 가꾸는 게 낙이다. 하루 일과를 마치면 저녁에 헬스장을 들르는 것도 잊지 않는다. 김씨는 “주변에서 나보고 제일 바쁜 사람이라고 한다”며 “하루 일과를 규칙적으로 생활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것뿐이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도 목표를 향해 정진 중이다. 시조창의 국창까지 왔으니 더 열심히 해서 시조창의 마지막 단계라 할 수 있는 대상에 이르는 것이 그의 큰 바람이다.

    김씨는 시조창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500여년의 빛나는 역사와 전통을 가진 시조창이 근대에 이르러 저변 확대에 어려움이 많아요. 정부 지원은 물론이고 학교 교육과정에도 편성돼 시조창 교육이 활성화됐으면 좋겠어요.”

    그는 또 공연 봉사활동을 늘리는 것이 바람이다. 시조창과 더불어 하모니카 동호회 활동으로 사회 곳곳에 공연 봉사활동을 더욱 늘리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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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태씨.

    그에게 노후란 무엇일까? 그는 “우선은 건강과 돈이 중요하겠지만, 돈의 경우, 반드시 얼마의 금액이 필요하다는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연금을 받는 그는 액수가 충분하지는 않다고 했다. 하지만 생활이 불편하지도 않다. 그는 노후 준비에 대해 “현재의 경제수준에서 적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사는 방식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했다.


    “나 역시 그랬지만, 은퇴자들은 처음에는 갑자기 할 일이 없어져서 무료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눈높이를 조금 낮추고 매사를 긍정적인 생각과 도전으로 임한다면 생각보다 할 일이 많을 거예요.”

    그와 인터뷰를 마칠 무렵, 동료 회원들이 시조창을 그에게 권유했다. “한 곡조 뽑아볼까요.” 장구 장단에 맞춰 그의 목소리가 골목 밖까지 울려퍼졌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김용훈 기자 yh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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