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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남북정상회담- 김용훈 사회부 기자

  • 기사입력 : 2018-04-2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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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정상회담이 임박했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세계의 이목은 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 쏠려 있다. 두 정상은 평화선언을 통해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할 것으로 보인다. 그외에도 파격적인 선언이 있지 않을까 하는 예상도 나온다. 한반도에 평화의 봄과 함께 남북 경협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는 즈음이다.

    ▼남북은 분단 이후 상호 대립과 반목을 지속해 왔다. 1970~80년대에도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양측의 입장 차이로 실질적인 진전은 없었다. 1990년대에 이르면서 탈냉전 등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 남북한의 대화가 진전되면서 1994년 7월에는 정상회담 개최 합의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김일성의 사망과 김영삼 정부의 조문 거부 등으로 남북정상회담은 무산됐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의 첫 시작은 2000년 6월이다. 그해 3월 9일 정상회담을 위한 비밀접촉에 이은 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 이후, 특사 간 세 번째 접촉에서 남북한은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하고 양 정상은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역사적인 첫 만남을 가진다. 제1차 정상회담의 결과물로 남북한 ‘6·15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됐다.

    ▼제2차 정상회담은 노무현 정권 때다. 2007년 ‘2·13 합의’ 이후 북핵문제의 진전이 가시화되면서 제20차 장관급회담이 개최되는 등 그해 10월 2일 노 대통령은 총 300명으로 구성된 대표단과 함께 육로를 통해 북한을 방문했다. 당시 노 대통령이 직접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는 역사적인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제2차 정상회담의 결과로 남북한은 ‘10·4 선언’을 발표했고, 이후 이행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남북총리회담 등 각종 회담이 열리고 20건의 합의서 및 공동보도문이 발표됐다. 그런데 되돌아보면 1·2차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되는 시기도 많았다. 이번 3차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인 회담을 기원한다. 더불어 궁극적으로는 더 이상의 남북정상회담이 필요치 않는 시기가 오기를 바란다.

    김용훈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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