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9월 26일 (수)
전체메뉴

일, 선악과를 따 먹은 죄(罪)일까- 이문재(경제부장)

  • 기사입력 : 2018-05-01 07:00:00
  •   
  • 메인이미지

    핀란드가 세계 최초로 시행했던 기본소득 실험을 끝내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핀란드 정부가 기본소득 시험사업을 주관하는 사회보장국이 요청한 660억원의 예산 증액안을 거부함에 따라 이 사업은 연말이면 종료된다. 기본소득은 개인에게 빈곤선 이상의 생활이 가능하도록 현금을 조건 없이 지급하는 것이다.

    외신들은 국민에게 ‘공돈’을 주는 실험이 실패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핀란드는 지난해 1월부터 기본소득 실험을 시작했다. 25~58세 실직자 17만명 중 2000명을 무작위로 선별해 매월 약 74만원을 지급했다. 사업 취지는 실업수당을 계속 받기 위해 임시 일자리조차 거들떠보지 않는 장기 실업자를 줄이기 위한 것이다. 기본소득 대상자는 일을 해 돈을 벌어도, 구직 활동을 하지 않아도 돈을 줬다. 여유를 가지고 장기적으로 일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일자리 찾기를 유도한 것이다.

    핀란드의 실험은 시행 초기부터 찬반이 엇갈렸다. 최소한 먹고살게는 해줘야 좋은 일자리를 찾는 욕구가 생길 것이라는 찬성론, ‘공돈’으로 놀고먹는 베짱이만 양산할 거라는 반대론이 팽팽했다. 이 실험은 기존 실업수당 제도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다.

    실업자들이 허접한 일자리라도 찾으면 실업수당이 대폭 줄어든다. 일을 하는 게 오히려 손해다 보니 장기 실업자가 늘게 됐다. 핀란드 정부는 일자리를 찾아도 기본소득을 깎지 않으면 구직 활동을 꺼리는 실업자들이 일용직이라도 구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실험의 ‘싹수’가 노랗고, 정부는 마음을 고쳐 먹었다. 국민들도 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결국 지난해 12월 ‘실업자가 복지 혜택을 받으려면 3개월 동안 최소 18시간 이상의 직업 훈련을 받거나 일해야 한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실패를 인정했지만, 그 이유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유의미한 이유를 끄집어 낼 만큼 기간이 길지도 않았고, 그 결론을 기다리기까지 버티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관련 전문가들은 기본소득제는 여전히 유효한 복지정책으로, 실험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로봇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4차 산업이 진행될수록, 대규모 실업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국민들에게 일자리 유무와 상관없이 최소한의 기본 생활을 안정적으로 보장해줘야 하는 것이 책무다. 우리나라의 기본소득제 관련 정책은 논의 단계다. 일부 지자체가 비슷한 제도를 도입했거나 시도한 적은 있지만, 국가 차원의 움직임은 없다. 아직 우리 사회가 ‘일할 수 있는 사람’에게 ‘공돈’을 준다는 데 대해, 너그럽거나 풍족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좀 섣부르지만 실험의 실패 이유를 유추해 보자. 일하는 것을 단순히 ‘힘들고 어렵다’고 받아들인 것은 아닐까. 때문에 가능하다면 피하고 도망가고 싶은 대상. 일이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행위가 아니라 고통이라고 생각했고, 정부는 이를 간과해 ‘헛돈’만 쓴 꼴이 됐다. 돈과 함께 국민들에게 일의 즐거움과 가치를 알리는 노력도 같이 했더라면, 이를 통해 사회공동체 모두의 합의를 이끌어 냈더라면, 핀란드의 실험은 연둣빛 싹을 틔웠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성경의 첫 장 창세기, ‘너는 죽는 날까지 수고를 해야만 땅에서 나는 것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창조주가 아담에게 명령한 ‘수고’가 꼭 선악과를 먹은 죄의 대가이기만 할까. ‘수고’를 통해 피조물의 자존감을 늘 깨우치라는 메시지는 아니었을까. 근로자의 날, 노동의 가치와 의미를 생각해 본다.

    이문재 (경제부장)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이문재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