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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체제의 입, 확성기의 추억- 전강준(부국장대우 사회2부장)

  • 기사입력 : 2018-05-0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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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83년 버마 아웅산 테러 사건은 북한 확성기로 알게 됐다. 우리 대통령을 제외한 수행원 대부분이 버마에서 크레모아 폭발로 사망한 사건이었는데, 정작 비무장지대에서 작전을 수행했던 우리는 신문, 방송을 볼 수 없는 관계로 전혀 몰랐다. “남한의 소행인데도 모든 책임을 북한의 소행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게 당시 북한의 주장이었다.

    시끄러웠다. 남북한이 동시에 앰프를 틀며 하루 종일 책임 공방을 벌였다. 비무장지대에 있는 아군 초소인 GP를 훨씬 지나 38선 앞에서 작전을 수행했던 우리로서는 두 곳의 주장을 동시에 들을 수 있었다.

    그럼 어느 곳 확성기가 성능이 좋았을까. 당시 그곳에 있던 동료들은 확실히 북한 것이 잘 들린다는 게 결론이었다. 귀가 북쪽 방향으로 열려 있고, 북에 너무 가까워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명확히 들리는 것은 북한 확성기였다. 깊은 밤 매복을 나가면 북 확성기는 낮의 책임 공방은 사라지고, 고향을 연상케하는 노래가 주를 이뤘다. 마음이 동한 군사가 넘어갈 수도 있었으니, 월북을 위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노래는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곡은 나오지 않았고, 우리 가요가 대부분이었다. 최희준의 ‘하숙생’, 이석의 ‘비둘기 집’, 가수는 기억나지 않지만 노랫말 중 “행복하게 우리 살아요…” 등 우리가 평소 접하는 노래가 비무장지대의 깊은 밤에 울려 퍼졌다. 물론 노래는 북한가수가 불렀다.

    노래가 끝나면 메가폰으로 북한 장병의 육성 월북 권장이 나왔다. “○○사단 수색대 여러분, 뛰면 5분, 걸으면 10분입니다. 여러분의 인생 중 가장 좋은 선택이 바로 이 순간입니다.” 이어 다른 장병이 메가폰을 이어받는다. “너희들 담배 다 떨어졌지, 남남북녀라는 말 들어봤지. 넘어 오라우. 내 동생 이쁘다우.”

    담배 떨어진 시기와 언제, 어떤 부대가 이곳에 투입됐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그 당시 참 신기했다. 그래서 그런지 당시 월남자보다 북한으로 가는 월북자가 더 많았다는 얘기가 회자되기도 했다. 그만큼 당시 확성기는 북한이 나았고 효과를 봤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성능뿐만이 아니라 확성기 문화는 남측이 나은 듯하다. 북한의 병사들은 K-POP 등 알 것 다 아는 신세대들로 추정돼 한국 문화에 매우 익숙해져 있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확성기의 음악방송은 다른 세계를 동경할 수 있었고, 흥겨웠을 것이다. 여기에 체제의 동향 등 심리전을 펼 때 확성기의 효과가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대응조치로 우리측이 확성기 방송을 시작하자 북쪽이 항의와 민감함을 보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측에서 선언문 이행의 첫 번째로 확성기 제거를 실천했음을 볼 때, 북한이 얼마나 확성기가 성가셨는지를 알 수 있다. 북한은 이에 상응한 이행을 보여줘야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어쨌든 판문점 선언으로 지난 1963년 5월부터 방송을 시작한 확성기는 55년 만에 철거하게 됐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없다’라는 말 속에, 수많은 병사가 겪었을 확성기의 우여곡절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전강준 (부국장대우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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