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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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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꽃들엔 - 김명수

  • 기사입력 : 2018-05-0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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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꽃들에겐

    설운 이름 너무 많다

    이를테면 코딱지꽃 앉은뱅이 좁쌀밥

    꽃건드리면 끊어질 듯

    바람 불면 쓰러질 듯

    아, 그러나 그것들 일제히 피어나면

    우리는 그날을

    새봄이라 믿는다



    우리나라 나무들엔

    아픈 이름 너무 많다

    이를테면 쥐똥나무 똘배나무 지렁쿠나무

    모진 산비탈

    바위틈에 뿌리 내려

    아, 그러나 그것들 새싹 돋아 잎 피우면

    얼어붙은 강물 풀려

    서러운 봄이 온다

    ☞요즘은 딸 낳으면 비행기 타고 아들 낳으면 버스 탄다는 우스갯말이 있을 정도로 여권이 신장되었지만,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여자에겐 설운 이름 너무 많다. 끝순 막순 딸막 또순 서분 분녀…, 아들을 간절히 바랐는데 딸로 태어나서 붙여진 이름들이다. ‘아, 그러나 그것들 새싹 돋아 잎 피우’고 꽃 피우듯 처녀가 되고 여자가 되고 화수분 같은 사랑의 젖줄 퍼올리는 어머니가 되고 그 젖줄 자식들 춥고 배고플 때 꺼내먹으면 춥지도 않고 배고프지도 않고 마침내 “낳으시고 기르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하늘 그보다도 높은 것 같애.” 어머님 찬가가 천지사방 울려 퍼지는 봄날이 왔다. “빛나” “보배” “미애” “경애” “은혜” “근혜”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는 우리나라 여자들의 봄날이 오고야 말았다. 조은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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