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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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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과 떠나는 세계여행] 에티오피아

순수를 담은 그들을 담다

  • 기사입력 : 2018-05-09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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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티오피아, 어느 날, 그리고 아이들의 노래하는 목소리 그리고 익숙한 노래 가사.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

    따라 불러 본 적이 있는지 없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오래된 노래이긴 하지만, 분명히 서른이 넘은 내게는 익숙한 노래가사였다. 다만 이 노래를 부르는 이들이 에티오피아의 어린 소년소녀들이었다는 점이 어색했다. 물론 어눌하고 완벽하지 않은 한국어로 부르는 노래였지만 고운 아이들의 목소리만큼은 국적과는 상관이 없었다. 의구심에 혹은 어색함에 물어보니 옆 동네(?) 다른 단체에서 꾸준히 해외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데 그곳에서 이 노래를 아이들한테 가르쳐 따라 부르게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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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티오피아에서 만난 어린아이의 눈. 나는 그들의 눈을 중심으로 사진을 찍었다.


    내가 속했던 단체가 의료봉사활동을 위주로 했던 것은 마다가스카르 때와 같았지만 에티오피아 오지지역에서는 문화나 주택 관련 활동과 미용이나 태권도 교육 같은 활동이 있었고, 그래서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현지로 함께 갔었다.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앞서 말한 옆 동네 거대 단체와 협업 같은 것도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가장 집중했던 것은 의료서비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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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티오피아 아이들의 눈은 아주 맑았다. 그들 눈의 흰자는 내가 세상에서 바라봤던 어떤 흰색보다 하얀색이었고 검은 눈동자는 세상에서 본 적 없는 강렬한 검정색이었다.



    주택사업을 하는 분들은 에티오피아의 전통 가옥에 창문을 내는 작업을 했고, 태권도를 가르치는 사범님은 에티오피아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쳤다. 미용사 한 분은 아이들의 머리카락을 잘랐고 그 민머리의 아이들 두피 상태를 보고 의료서비스로 이어지기도 했다. 같이 갔던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댄스스포츠를 가르치고 공연을 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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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티오피아 현지 아낙의 웃음.



    나는 그곳에서 다양한 활동들을 촬영해서 기록으로 그려야 했기에 여기저기를 편히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촬영했다. 아마도 거기 있던 사람들이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자유로움은 아니었고, 앞서 말했듯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는지도 모르고 그 노래를 몇 번이나 들을 수 있었던 것일지 모른다. 시간이 갈수록 더 ‘새마을운동’이라는 발음을 훌륭하게 소화하는 아이도 있었고, 간혹 사진을 찍어달라며 내게 호의를 보이는 방법으로 그 노래를 부르는 아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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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에서 찍은 아이의 얼굴.



    정책적으로 새마을운동이라는 국민의식과 행동에 대한 ‘계몽운동’ 혹은 ‘계도운동’의 성공 케이스인 대한민국 모델을 에티오피아에 적용해서 그들에게도 우리와 같은 영광을 누리게 하는 계획을 점차적으로 실행하려고 했던 것 같다. 딱히 그 시절을 관통해서 자라온 세대도 아니고, 사실은 그 당시가 어땠는지 모르는 나로서는 별 생각 없이 ‘아, 우리나라에서 타국에 대한 지원을 이렇게 하는구나’ 정도 이상의 생각을 하지는 않았는데 청아한 음색 뒤에 어눌한 우리말 발음처럼 어색하고 불편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사실 봉사활동으로서의 사진 활동에 매진한 것과 별개로 끊임없이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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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용 서비스를 받는 아이.



    당시 렌즈를 통해 에티오피아를 바라보던 내가 처음에는 아프리카 대륙의 광활함이나 내가 경험한 적 없는 자연환경에 놀랐는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정말 매료되었던 것은 그곳 사람들의 눈빛이었다. 그 눈빛 속에 어떤 명확한 단어의 감정이 전달됐다면 매료될 리가 없었을 거다. 여전히 그때 사람들의 눈빛을 찍었던 사진들을 바라보면서도 한 단어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런 게 가능할 리 없는 눈빛이었다.

    마치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여자를 떠올리며 ‘뭐가 좋았어?’라 물었을 때 구구절절 예쁘다는 말을 부분 부분 나눠서 설명하다 지쳐서 다 못하거나 혹은 ‘그냥 좋았지, 말로 설명 다 못하지’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그런 것이야말로 정말로 매료당했다 말할 수 있듯이.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눈빛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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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티오피아 현지인의 모습. 아이의 모습만큼이나 어른의 모습도 내겐 인상 깊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 눈빛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중에 ‘미개함’ ‘안타까움’ ‘도움이 필요한’ 따위의 감정이 느껴진 적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아니 결코 내가 그들 눈을 통해 바라본 점들은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이 아니었다. 순수한 의지와 함께 가능성을 느꼈던 걸까. 그러면서 어느새 ‘새마을운동’이라는 노래가 더욱 불편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거대 단체에서 진행하는 큰 정책에 대해 비판하거나 할 생각은 없고 나아가 어떤 식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조언을 할 자격도 능력도 없는 사람이라 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수많은 성과를 냈던 그 시절 새마을운동이라는, 나는 경험치 못한 우리나라 국가 정책에 대해 비판할 마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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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의 웃음, 에티오피아 말로 얼굴을 ‘Gatsta’라고 발음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외국이 모든 면에서 다 훌륭하다는 사대주의적 발상을 가진 사람은 아니지만, 분명히 한국형 국가 발달 모형이 또한 모든 면에서 훌륭한 결과만을 낳았다라고 생각하지는 않게 된것도 오랜 여행 끝에 알게 된 사실이다. 내가 말하는 나쁜 결과 그것이 새마을운동의 결과만은 아닐 테지만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영광의 시대 또한 새마을운동이 낳은 황금알은 아니라는 말이다.

    ‘새마을운동’이라는 노래가 에티오피아 현지 아이들 입에서 한국말로 불리는 모습은 일방적인 한국식 계몽 운동을 주입하는 일환으로 보였다. 그렇게 행해지는 해외봉사활동을 보며 나는 어떤 오류 섞인 우월함이 바탕에 있어 보였고, 어쩌면 그것이 전체적인 불편함을 내게 준 것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물이 부족한 그들을 위해 수도시설을 마련해주고 그들의 피부위생을 위해 미용을 하거나 창문이 없이 지내는 그들을 위해 창문을 만들어 주는 활동들과 새마을운동 노랫말을 한국어로 따라부르기는 내게 다른 영역 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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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봉사활동 단체와 함께 바자회를 하는 에티오피아 현지인의 모습.



    분명히 에티오피아 그들의 생존과 관련한 것들이 많이 변해야 하는 것 같이 보였다. 그리고 그런 필요한 발전, 혹은 생명 그 자체를 보존하기 위해서 우리나라 수많은 단체의 손길은 분명 감사한 일이다. 필요한 원조이기도 하다.

    그리고 정책의 도움은 분명 필요했지만 에티오피아에 주입하려 하는 것처럼 보이는 대한민국 발전 모델도 우리 국민의 자주적인 노력과 가능성, 그리고 국민들 그 자체가 가진 힘이 없었다면 있을 리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시민의 현명함이 시련을 극복하고 발전해온 과정을 언제나 지나왔었고 두 눈으로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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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티오피아 봉사활동 내내 내 눈을 사로잡은 아이였다.



    허나 적어도 내가 바라봤고 나를 관통하는 듯했던 그 눈빛들은 그들의 자주적인 혹은 자조적인 노력들을 통해 힘든 시간들을 이겨내고 조금 발전함이 느리더라도 그들이 진짜 느낄 수 있는 행복함들을 온전히 누려가면서 스스로 그 길을 찾아 변해 갈 거라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식 발전 모델이 그들에게 영광의 시대가 오게끔 할 수도 있을 테지만 내가 바라봤던 그들 눈의 흰자는 내가 세상에서 바라봤던 어떤 흰색보다 하얀색이었고 검은 눈동자는 세상에서 본 적 없는 강렬한 검정색이었다. 줌인 해서 찍었던 그들의 눈동자 속에는 맑기가 얼마나 맑았는지 언제나 그들의 사진을 찍는 내 모습이 안에 그대로 원형으로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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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눈을 가졌던 그들이 오늘날 내가 거울 속에서 매일을 바라보는 내 눈을 닮아가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쓰는 글이다. 내 신세나 우리나라의 지금에 비관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그들의 눈과 나의 눈은 달랐다. 순수했고 강했다. 난 언제나 그들의 눈이 그리워서 자주 그때의 사진으로 그들의 눈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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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강(리버맨)

    △1983년 마산 출생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졸업

    △창원대 사회복지대학원 재학중

    △카페 '버스텀 이노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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