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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칼럼] 교사의 진로 걱정

  • 기사입력 : 2018-05-1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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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혼을 한 뒤에야 깨달았다. 동화책 마지막 장에 나오는 ‘왕자와 공주는 결혼을 하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가 진짜 끝이 아니라는 것을. 결혼은 부부가 연애할 때 몰랐던 서로에 대해 싸워가며 알아가고, 임신과 출산, 육아, 어린이집, 유치원 등 자식을 낳아 기르는 여러 미션 중에 시작일 뿐이었다. 아마 동화 속 왕자도 변기 주변에 오줌을 튀겨 공주가 더럽다고 화를 많이 냈을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자는 절대 변기에 앉아서 쌀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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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사의 인생도 다를 게 없다. 고등학생 때는 대학교만 붙으면 끝이라 생각했고 대학생이 돼서는 임용시험에 붙으면 끝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교사가 되어 10년 넘게 일하다 보니 그것도 아니더라. 요즘에는 연구학교나 농어촌학교에 근무하면서 차근차근 승진을 준비하는 친구들을 보면 나는 지금 뭐하고 있나 걱정이 든다. 시작은 똑같았는데 다시 10년 뒤에 관리자가 된 친구가 평교사로 남은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면 어쩌나 두렵다. 중고등학생이 된 딸아이가 초등학교 교사라는 아빠의 직업을 부끄럽게 여기면 어쩌나 두렵고, 먼 훗날 상견례 자리에서 사돈 될 분들이 ‘소풍 가시면 참새~ 짹짹~ 하면서 애들 데리고 다니시겠네요’라고 비웃을까 봐 두렵다.

    하지만 난 승진에 필요한 점수를 계산할 치밀함도 없고, 승진을 준비하는 선수들과 경쟁해서 이길 자신도 없다. 변명같이 들리겠지만 학교를 마치면 서둘러 유치원에 남아 있는 첫째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고, 저녁밥 먹은 설거지를 해야 하는 것처럼 가정에서 맡은 역할도 있기 때문에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오로지 학교에 쏟아붓기도 힘들다.

    상황은 이런데 가슴 한편에서는 뭐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원고료도 주지 않는 이 교단칼럼에 연락 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마워 몇 년째 기고하고, 그림 잘 그리는 처제에게 삽화를 부탁해서 동화책 공모전에도 기웃거린다. 2018년 1월에 발표한 신생 출판사의 공모전에서는 내가 쓴 작품이 출품작 109편 중에 본선 11편에 들었지만 아쉽게도 최종 2편에 들지 못해 출판은 하지 못했다. 딸아이가 유치원에서 빌려오는 책을 조금 더 분석적으로 읽고 글쓰기 내공을 쌓아간다면 몇 년 뒤에는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다. 올해는 수업연구교사 대회에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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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녕 (김해삼성초 교사)

    우리 학교 연구부장님이 같이하자는 말에 함께 쓴 보고서가 덜컥 붙었다. 영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과학의 우주 단원을 토의 토론과 다양한 체험 활동으로 가르치고 의사소통능력이나 협업능력, 비판적사고력, 창의성 같은 미래사회에 필요한 역량까지 길러주자는 내용이다. 잘만 한다면 다른 선생님께 알려줄 만한 가치 있는 연구가 될 것 같다. 친구들처럼 관리자가 되지 못하겠지만 딴에는 열심히 사는 교사, 바로 이것이 나의 진로다.

    이상녕 (김해삼성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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