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9일 (금)
전체메뉴

(730) 자공여묘(子貢廬墓)- 공자의 제자 자공이 공자 묘소에서 움막을 짓고 상주 노릇하다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 기사입력 : 2018-05-15 07:00:00
  •   
  • 메인이미지


    중국 산동성 곡부(曲阜) 공림(孔林)의 공자 묘소 서남쪽에 집이 한 채 있고, ‘자공여묘처(子貢廬墓處)’라는 비석이 있다. 공자의 제자 자공이 이 집에 기거하면서 6년 동안 공자의 상주 노릇을 했다.

    공자가 사후 많은 제자들이 심상(心喪) 3년의 상주 노릇을 했다. 스승과 제자는 혈연관계가 아니라서 예법에 상주 노릇하라는 규정이 없다. 그래서 마음으로 아버지 상에 상주 노릇하듯 하는 것이 ‘심상’이다.

    3년 동안 상주 노릇을 한 제자들은 모여서 한바탕 통곡을 하고, 각자 흩어져 각 지역에 가서 공자의 학문을 전하기도 하고, 혹은 다른 직업에 종사하기도 했다.

    자공(子貢)은 그래도 스승의 가르침의 은혜에 대한 자신의 보답이 미흡하다고 생각하여 혼자 다시 3년 동안 상주 노릇을 더했다. 공자께서 제자들에게 준 감화가 깊은 것은 말할 것은 없지만, 자공이 스승을 흠모하는 지극한 정성은 후세에 두고두고 큰 감동을 주었다.

    오늘날은 스승 된 사람들은 학덕에 있어 대부분 공자보다 못하겠지만, 제자들이 스승을 공경하지 않는 것이 너무 심하다.

    필자의 은사인 연민(淵民) 이가원(李家源) 선생은 한학자로서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성균관대학교와 연세대학교 교수로서 제자를 가르친 훌륭한 교육자였다.

    그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수도 없이 많다. 현직에 계실 때는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었다. 학교 강의와 논문 지도는 물론이고, 그의 추천으로 교수나 언론사 출판사 등지의 간부가 된 사람이 수없이 많다.

    그러나 제자들 가운데는 선생이 퇴직하자마자 발길을 끊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심지어는 연민 선생을 싫어하는 교수 편에 붙어서 연민 선생에 대해서 안 좋은 말까지 하는 사람이 있었다. 선생의 영향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세상을 떠나자 더 심해졌다. 심지어 문상도 안 온 제자들도 적지 않았다. 선생의 학문을 연구하는 연민학회(淵民學會)가 있는데, 오늘날까지 참석하는 제자들은 정말 몇 안 된다. 학회를 운영하는 데 상당한 경비가 드는데, 전인초(全寅初), 허경진(許敬震), 윤덕진(尹德鎭) 교수 등이 경비를 다 부담하고, 회장인 필자가 조금 도우는 정도이다.

    언젠가 학회 하는 날 학회 장소 입구에서 자칭 ‘연민의 수제자’라는 사람과 마주쳤다. 그가 “볼일이 있어 좀 있다가 참석하겠습니다”라고 말했는데, 그날 학회는 물론 그 뒤에도 연락 한 번 한 적이 없다.

    연민 선생의 교육 방법이 좋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스승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나 많이 바뀌었다.

    마침 오늘이 스승의 날이라, 스승을 대하는 제자들의 태토를 한번 생각해 봤다.

    *子 : 아들 자. *貢 : 바칠 공.

    *廬 : 움막 려. *墓 : 무덤 묘.

    동방한학연구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