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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모욕 사회에서 살아남기- 이태희(김해중부경찰서 수사과 경사)

  • 기사입력 : 2018-05-1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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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딸아이와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을 거닐다가 책을 사준 적이 있다. 서바이벌 만화 시리즈 중 ‘바다에서 살아남기’라는 제목의 책이다. 넘쳐나지만 절대 마실 수 없는 바닷물과 풍요롭지만 자칫 목숨마저 빼앗을 수 있는 강렬한 태양만이 존재하는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기어코 살아남는 설정이 예사로 볼 수 없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여느 오지 못지않은 척박한 환경으로 변해버렸다. 끊임없는 경쟁 속에 여유가 없어지고 배려와 존중은 요원해졌다. 그런 탓에 극한의 경쟁에서 낙오되면 자신의 부족함을 반성하기보다 공정하지 못한 방법으로 경쟁이 이루어졌다고 의심부터 하는 세태가 만연하다. 그리고는 상대를 부정하고 물리적으로 인격적으로 무릎 꿇게 만든다. 상대방을 모욕 주는 것만이 자신의 존재감과 우월감을 확인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부지불식간에 우리 사회는 이미 모욕 사회가 돼버렸다.

    모욕의 사전적 의미는 깔보고 욕되게 함이다. 이스라엘 히브리대학 교수 아비샤이 마갈릿은 모욕이란 한 사람의 자존감에 상처를 주는 것이라고 정의하면서 타인과의 이해관계에 대한 통제력과 존중을 강조했다. 타인의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인간이다. 더불어 살 수밖에 없는 운명임에도 인간을 인간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 즉 상대방을 나와 동등한 인간이 아니라 단순한 물건이나 도구, 동물 혹은 열등한 존재에 불과한 것처럼 대우한 결과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단상이다. 특히 자본주의의 정점에 살고 있는 우리는 돈을 냈다는 이유만으로 종업원에게 무조건적인 복종과 응대를 요구하면서 정당한 권리라고 주장한다. 한참 잘못 알고 있다. 돈을 주고 구매할 수 있는 것은 재화나 서비스뿐이지 한 사람의 인격이 아니다. 먹고살기 위해 이런 모욕을 견뎌야만 한다면, 돈 앞에 이런 모욕은 당연한 것이라고 치부된다면 이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칸트는 타인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고 했다. 돈, 권력, 지위 따위로 평가절하 말고 동등한 위치에 서서 타인의 존재 그 자체를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사회 풍조가 아닐까 한다. 나의 자존감과 존엄성이 소중하다고 생각되는가. 그러면 타인의 그것도 어떨는지 한번 생각해보자. 아, 참고로 ‘바다에서 살아남기’의 주인공 가족들은 수많은 난관에도 서로를 의지하며 버티다가 거의 한 달여 만에 구조되는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모욕 사회에서 살게 된 우리도 수많은 불화와 갈등을 겪겠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해피엔딩으로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태희 (김해중부경찰서 수사과 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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