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5월 26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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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공간 (24) 사천 ‘cafe 정미소’

쌀 가득했던 정미소에 문화가 가득찼다

  • 기사입력 : 2018-05-17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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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철 바람개비는 살랑이는 바람에도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녹슨 드럼통을 공중에 매달아 ‘cafe 정미소’라고 간판을 내건 모습도 이색적이다. 마당 곳곳에는 정미소를 리모델링하면서 나온 폐기계들이 손님들을 반긴다. 출입문 손잡이도 색깔이 바랜 양구스패너로 대체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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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천시 송포동 남양정미소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롭게 단장한 ‘카페 정미소’.


    1953년 세워져 나락(벼)을 도정하던 남양정미소는 2016년 6월 문을 닫기 전까지 63년 동안 우리네 삶과 함께한 후 세련되게 단장해 ‘카페 정미소’로 탈바꿈했다. 쌀창고로 이용하던 공간은 개조해 전시·공연 등 다양한 문화 활동과 작은 도서관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 쌀’과 ‘작은도서관 쌀’ 등 복합문화공간으로 바뀌었다. 역사성과 가치는 그대로 보존하면서 새로운 조형물과 의미를 더해 새로운 공간으로 업사이클링 (Upcycling)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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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 쌀 승강기 등 옛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카페 정미소 내부.


    카페 정미소 안으로 들어서면 마치 70~80년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세계에 온 듯한 착각에 빠져들 정도로 투박함과 멋스러움이 교차한다. 정미소 안 풍경은 옛 흔적을 가능한 한 그대로 살리려 애썼다. 카페 입구 한편에 큼직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빨간 쌀 승강기와 석발기, 기계를 돌리는 벨트와 동력기 그리고 벽면을 장식한 각종 폐기구들. 곳곳에 장소의 특징을 세심하게 살린 인테리어 소품들이 눈길을 끈다. 천장은 정미소 당시 사용했던 서까래와 원목들이 이리저리 엇갈리며 대부분 원형을 유지한 채 운치를 더하고 있다. 멈춰 선 쾌종벽시계와 층층이 쌓인 브라운관 컬러 TV 등 곳곳에 설치된 소품들은 세월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낡음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면서 멋스러움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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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도서관 쌀’.


    사천시 송포동에 위치한 남양정미소는 1970~1980년대 식량증산이 국가적 과업이던 시절에는 정미소의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았고, 쌀창고에 도정을 기다리던 나락과 도정을 마친 쌀이 가득했을 정도로 호황을 이뤘다. 가을 수확철이면 경운기에 나락을 싣고 온 농부들이 차례로 줄을 서서 나락을 적재할 정도였지만, 문을 닫기 전에는 일주일에 1~2회 정도 기계가 돌아갈 정도로 불황을 겪었다.

    화가 출신의 카페지기 이가형(39)씨가 지난해 1월 ‘카페 정미소와 공간 쌀·작은 도서관 쌀’을 개업하기 전까지 남양정미소는 그의 할아버지(이인구·1982년 작고)와 아버지 이문상(71)씨가 대를 이어 도정을 했던 생업의 공간이자 아련한 추억의 공간이다.

    카페지기는 정미소가 쇠퇴하면서 경제적으로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정미소를 어떻게 활용할지, 공간 활용에 대해 고민하던 중 평소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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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갤러리 겸 공연장 ‘공간 쌀’.


    이씨는 “베이징 798예술거리 연수 시절 군수공장이었던 건물을 허물지 않고 재활용해 예술 공간으로 탄생하는 것을 보았다. 독일, 스페인 등 유럽에서도 탄약 공장 등 폐공장을 재활용해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으로 재활용하는 사례가 많아 이를 실현한 것이다”고 말한다.

    그가 정미소를 개·보수하는 과정에서 가장 주안점을 둔 것은 최대한 정미소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려 했다는 것이다. 손을 대면 댈수록 평범해지고 박스 형태의 건물이 되기에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폐기계나 구조물들도 자연스럽게 표현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정미소를 카페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처음 손을 댄 곳은 현재의 전시·공연이 이뤄지고 있는 ‘공간 쌀’, 쌀창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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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 정미소’의 다양한 문화행사.


    이씨는 “전시·공연이 이뤄지는 공간 쌀에 어울리는 업종을 골랐다. 처음엔 술집, 식당 등 다양한 업종에 대해 고민했다. 하지만 문화와 연계하다 보니 카페로 결정하게 된 것이다. 처음부터 카페를 고집한 것은 아니었다”고 이야기한다.

    마당을 건너 ‘공간 쌀’ 입구에 서면 아담한 크기의 갤러리 겸 피아노가 놓인 공연장을 만난다. 입구에 설치된 안내판에는 ‘스승의 날 기념음악회’와 ‘김선아’·‘김일영’ 작가의 개인전을 알리는 안내 포스터가 붙어 있다. ‘공간 쌀’ 출입구 역시 폐자재를 활용한 손잡이와 당시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도르래, 철근을 이용한 갤러리 벽 등 옛 흔적을 그대로 살렸다. 천장에는 쌀창고로 이용할 당시 사용한 재활용 목재가 그대로 있고, 건물을 지은 날짜를 표기한 상량문도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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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 정미소’의 다양한 문화행사.

    공간에 대한 작업은 2014년 6월부터 쌀창고를 미술작업실 겸 갤러리로 바꾸는 것부터 시작했다. 일단 쌀창고는 비용이 발생하는 부분이 아닌 정리만 제대로 해도 전시·공연장으로 사용할 수 있을 거 같아 직접 공사에 나섰으나, 도면이나 정해진 틀에 맞춰 개·보수를 한 것이 아니라 현장의 여건에 맞춰 작업을 진행했고 주변의 미술을 전공한 선후배들의 도움을 받아 작업을 진행하다 보니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틈틈이 진행된 작업은 2016년 6월 정미소가 문을 닫으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돼 카페는 6~7개월 만에 공사가 마무리됐지만 ‘공간 쌀’과 ‘작은도서관 쌀’은 공사기간이 무려 4년가량 소요됐다. 이곳 역시 전체적으로 외형과 골조는 그대로 살리고 녹슨 함석지붕은 걷어낸 후 새롭게 단장했다.

    카페와 공연·전시장을 찾은 손님들을 위해 ‘공간 쌀’의 벽면을 뚫어 만든 ‘작은도서관 쌀’에는 미술관련 전문서적을 비롯해 동화, 만화, 소설, 그림책 등 다양한 서적 2000권가량을 구비해뒀다. 카페와 전시장을 찾은 손님들이 편안히 책을 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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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 정미소’의 다양한 문화행사.


    ‘카페 정미소’와 ‘공간 쌀’이 문을 연 지 1년 4개월. 그동안 ‘피아노 트리오 Cincy-A’, ‘신시아와 함께하는 봄봄콘서트’, ‘더 디바즈- 작은 콘서트’, ‘가을 그리고 브람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CINEMA CONCERT’ 등 16회의 클래식·팝밴드 공연과 유석규 개인전’, ‘영호남작가교류전’ 등 10여 회의 미술전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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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 정미소’의 공연 일정.


    현재 ‘공간 쌀’은 공연은 하고 싶은데 공연장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이들과 전시장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또 문화·예술 관련 행사나 모임 대관신청 시 검토 후 공간을 대여하고 있다.

    ‘공간 쌀’은 입소문을 타면서 찾는 이들이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공간이 좋아서 찾는 이, 지역에서 활동 중인 아마추어 뮤지션, 공연자들의 소개 등 다양한 장르에서 공연·전시에 관한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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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씨는 “공간에 무엇을 채우느냐에 따라 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치는 달라진다. 공간이 문화와 결합하면 굉장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공간 쌀’과 ‘카페 정미소’는 공간을 통해 행위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과거와 현재가 함께 공존하는 ‘카페 정미소’와 ‘공간 쌀’은 우리들에게 차 한잔의 여유와 추억의 공간을 제공하며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

    글·사진= 이준희 기자 jh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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