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선캡과 마스크로 무장한 채
구십 도 각도로 팔을 뻗으며 다가오는 아낙들을 보면
인생이 무장강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동계적응훈련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제대한 지 몇 년인데, 지갑은 집에 두고 왔는데,
우물쭈물하는 사이 윽박지르듯 지나쳐 간다
철봉 옆에는 허공을 걷는 사내들과
앉아서 제 몸을 들어올리는 사내들이 있다 몇 갑자
내공을 들쳐 메고 무협지 밖으로 걸어 나온 자들이다
애먼 나무둥치에 몸을 비비는 저편 부부는
겨울잠에서 깨어난 곰을 닮았다
영역표시를 해놓는 거다
신문지 위에다 소주와 순대를 진설한 노인은
지금 막 주지육림에 들었다
개울물이 포석정처럼 노인을 중심으로 돈다
약수터에 놓인 빨간 플라스틱 바가지는 예쁘고
헤픈 처녀 같아서 뭇입이 지나간 참이다
나도 머뭇거리며 손잡이 쪽에 얼굴을 가져간다
제일 많이 혀를 탄 곳이다 방금 나는
웬 노파와 입을 맞췄다
맨발 지압로에는 볼일 급한 애완견이 먼저 지나갔고
음이온 산책로에는 보행기를 끄는 고목이 서있으니
놀랍도다, 이 저녁의 평화는 왜 이리 분주한 것이며
요즘의 태평성대는 왜 이리 쓸쓸한 것이냐
☞ 이 시를 읽으면 너무 리얼해서 시 속에 그려진 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내 모습 같고 내가 만난 사람들의 모습 같아서,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습관을 들켜버린 듯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그들은 지금 기계화와 대량생산시대가 파생시킨 영양과잉과 운동부족이 낳은 현대병과 싸우고 있는 것이리라. 그러기에 이 시 속의 ‘도봉근린공원’ 풍경은 이 땅의 모든 근린공원 풍경이 될 것이다, 이처럼 병 주고 약 주는 격이 돼버린 현대문명의 실체를 휴식과 여유와 힐링의 상징인 근린공원 풍경(‘분주한 평화’‘쓸쓸한 태평성대’)으로 역설해 공감과 고발과 문학성을 고루 획득한 고품격 문명비판 시가 탄생된다. 조은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