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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천에서 낚시하는 그림 - 변종현(경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 기사입력 : 2018-05-2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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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은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으로, 승려가 돼 방외인(方外人)으로 살았던 인물이다.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이름이 나 다섯 살 때에는 세종에게 불려가 시를 짓고 비단 50필을 하사받았다. 스물한 살 때 삼각산 중흥사에서 글을 읽다가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했다는 소식을 듣고 읽던 책을 불사르고 절을 내려왔다. 그는 현실에 저항하는 방법으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됐지만 수염은 길렀다. 이에 대해 그는 ‘머리를 깎은 것은 세상을 피하기 위해서이고, 수염을 기른 것은 장부의 기상을 나타낸 것이다’라 했다.

    이제신이 지은 ‘청강시화(淸江詩話)’에 보면 서거정이 김시습을 초대해 ‘위천에서 낚시하는 그림(渭川漁釣圖)’을 보여 주면서, 이 그림에 어울리는 제화시(題畵詩)를 써 달라고 부탁하자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줬다고 한다.

    風雨蕭蕭拂釣磯(풍우소소불조기) 비바람이 쓸쓸하게 낚시터에 들이치니

    渭川魚鳥識忘機(위천어조식망기) 위천 사는 물고기 새들 욕심 잊을 줄 아는데

    如何老作鷹揚將(여하노작응양장) 어찌하여 늘그막에 용맹한 장수 돼 가지고

    空使夷齊餓採薇(공사이제아채미) 공연히 백이 숙제 고사리 캐다 죽게 했나?

    이 시를 받아 본 서거정은 한동안 말없이 있다가, 이 시는 나의 죄안(罪案)이라고 했다. 즉, 시를 통해서 자신의 정치적 행보를 질타하고 있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은 강태공(姜太公)으로 불린다. 태공망이라는 명칭은 주나라 문왕이 위수(渭水)에서 낚시하고 있던 여상을 만나 선군인 태공이 오랫동안 바라던 인물(望)이라고 여긴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김시습은 오랜만에 만난 서거정에게 당신은 강태공 같은 인물이라고 혹평하고 있다. 비바람이 낚시터에 세차게 들이치니 위천에 사는 물고기와 새들도 욕망을 잊어버리고 있다. 평소에 물고기들은 새들을 경계하고, 새들은 물고기들을 잡아먹으려고 하는데,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니까 물고기와 새들은 서로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쩌하여 늙어서 강태공처럼 용맹한 장수가 되어 부질없이 백이와 숙제를 고사리 캐어먹다가 굶어 죽게 만들었냐는 것이다. 강태공은 위수에서 낚시를 하다가 문왕을 만나 태사(太師)가 됐고, 이어 무왕 때에는 주(紂)왕을 몰아내고 주(周)왕조를 탄생시킨 인물이다.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 무왕이 주(紂)왕을 치려 하자 ‘신하로서 임금을 시해하는 것은 안 된다’고 만류하다가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먹다가 굶어죽은 인물이다.

    이 시에서 매월당은 서거정을 강태공에, 백이와 숙제를 사육신이나 생육신 같은 인물로 그려내고 있다. 매월당은 중국의 고사를 원용해서 세조의 왕위 찬탈과 세조의 공신들을 비판하고 있다.

    변종현 (경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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