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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덕비(頌德碑)- 이상권 정치부 부장

  • 기사입력 : 2018-05-2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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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방관료의 선정을 기리는 송덕비(頌德碑) 효시는 전남 순천 ‘팔마비(八馬碑)’다. 고려 충렬왕 때 순천 영동지방 승평부사를 지낸 최석(崔碩) 선정비(善政碑)다. 최 부사가 비서랑으로 직을 옮기자 백성들은 관례대로 말 8필을 선물했다. 하지만 최석은 폐습이라며 개경으로 오는 도중 태어난 망아지까지 합해 9필을 돌려보냈다. 감동한 백성들이 송덕비를 세우고 팔마비라고 불렀다. 이를 계기로 부사에게 말을 선물하던 폐해가 사라졌다.

    ▼관료의 공덕을 칭송해 백성이 자발적으로 세우는 것이 송덕비의 취지다. 공적을 엄격히 심사해 왕의 칙령을 받도록 했지만 협박과 억지를 앞세우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비 건립을 강요한 관리의 악정에 대한 분풀이로 비사치기(비석차기) 놀이가 생겼을 정도다. 조선시대 탐관오리의 대명사인 조병갑은 부친 송덕비를 세운다는 핑계로 돈을 걷다가 동학농민운동에 불을 지폈다. 함양군수 시절을 칭송한 선정비의 진실성 논란도 이 같은 행적에 근거한다.

    ▼전국에 산재한 송덕비는 과거 훌륭한 목민관(牧民官)이 많았다는 방증이겠지만 실상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김훈의 소설 ‘흑산(黑山)’에 묘사된 조선 민초의 삶은 지옥이다. ‘일 년 동안 현감이 네 번 바뀌어 전별금을 모으느라 마을은 결딴이 나고, 송덕비를 세우는 사이 새 수령 행차가 또 들이닥친다. 백성은 신관 사또가 오래 머물게 해달라며 관찰사에게 소장을 올린다. 끼니거리도 없는 마을 어귀에는 송덕비 스무 개가 즐비하다.’


    ▼다음달 13일 새로운 ‘지방권력’이 대거 탄생한다. 로마 전성기를 이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명상록’에서 지도자의 덕목을 나열했다. “늘 소박하고, 선하고, 순수하고, 진지하고, 가식 없고, 정의를 사랑하고, 신을 두려워하고, 자비롭고, 상냥하고, 맡은 바 의무에 용감한 사람이 되라.” 송덕비를 세우고픈 참된 지역일꾼이 대거 탄생하길 기대한다.

    이상권 정치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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