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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행복한 삶’의 계산법- 이문재(경제부장)

  • 기사입력 : 2018-05-2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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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개의 중소기업에게 납기일은 데드라인(deadline)이다. 납기일을 지키지 못하면, 말 그대로 죽는다. 물량을 줄이든, 단가를 낮추든 어떤 형태의 페널티라도 달게 받아야 하는 게 중소기업의 처지다. 제때 원하는 물건을 넘겨줘야, 위태위태한 거래 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다.

    한창 호황이었던 시절, 골목골목의 작은 공장에서 쇳소리와 불빛이 흘러나오는 것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이른 새벽에 기름이 잔뜩 묻은 작업복의 먼지를 털며 해장국집을 찾던 노동자들을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당사자들의 심신이야 얼마나 고달팠을까마는, 그때의 땀과 수고가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큰 몫을 했다. 그리 오랜 시간을 되돌리지 않아도 근면과 성실, 좀 달리 표현하면 ‘오랜 시간 묵묵히 일하는 것’이 노동시장에서 ‘최고의 선(善)’으로 여겼다.

    그런데 어느 순간 노동시간이 문제가 됐다. 사회 각 분야에 불어닥친 민주화 바람은 성장논리에 억눌려 있던 인권에 대한 반성과 해법을 모색하게 했고, 특히 거의 무방비였던 노동자 인권에 관한 논의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2016년 기준 한국의 노동시간은 연 2052시간으로 OECD 국가 중 2번째로 많았다. 이로 인해 노동자들은 건강을 해치고, 스트레스나 우울증 등에 시달린 게 사실이다. 정부가 오는 7월부터 법정근로 시간을 주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시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장시간 노동국가’라는 오명에서도 벗어나야겠고, 노동자들이 여유를 갖고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

    정부는 ‘주 52시간 근무제’의 조기 정착을 위해 기업과 노동자에 대한 재정 지원 방안을 내놓았다. 기업이 신규인력을 채용할 때 정부가 인건비의 일부를 일정 기간 지원하는 게 골자다. 이와 함께 노동시장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탄력적 근로 시간제’도 운영할 계획이다.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면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고, 산업재해가 줄고, 노동생산성이 오를 것이라는 게 정부의 기대다.



    하지만 중소기업 현장 분위기는 침통하다. 노동시간을 줄이면 일할 사람을 더 뽑고, 생산시설도 늘려야 하는데 투자여력이 없다. 따라서 특별연장근로제를 확대·연장하고, 탄력적 근로시간제도 단위기간을 늘려야 된다는 주장이다. 노동자들도 마냥 좋지는 않다. 당장 임금 소득이 줄어 호주머니가 가벼운데, 여유가 생긴들 즐길 수 있느냐는 것이다. 단순한 근로시간 단축이 ‘저녁이 있는 삶’과 직결되는 데 확신이 없다. 유휴시간이 늘어나면 이로 인해 소비 촉진과 서비스 분야의 고용창출이 발생할 것은 예상된다. 반면 소득감소는 장기적으로 소비위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중기중앙회가 근로시간 단축제와 관련한 최근 조사에서 가장 필요한 정부 지원책에 대해 ‘신규채용 또는 기존근로자 임금감소분 인건비 지원’, ‘인력부족이 심각한 업종에 대한 특별공급대책 마련’, ‘설비투자 확대 자금 지원’,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 등 제도 개선’ 등을 꼽았다. 모두가 급격한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기업과 노동자가 우려하는 내용과 맞닿아 있다.

    괜한 엄살이 아니라, 즉시 마주할 현실이고 절박하다는 얘기다. 논란이 아직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노동자 삶의 질을 높이려는 첫걸음은 시작됐다. 누구나 행복을 좇고, 여유로운 삶을 꿈꾼다. 당연한 명제의 연착륙을 위한 사회구성원 모두의 지혜와 결단이 절실해 보인다.

    이문재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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