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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비켜주시지 않겠습니까(달개비의 사생활2) - 고형렬

  • 기사입력 : 2018-06-1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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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잎사귀의 모양만큼만 햇빛이 들어왔다 내 눈에

    만져진 광량은 환했고 깨끗했다

    지하에서 음지식물들이 자꾸 기침을 할 무렵


    식물대는 찢어지면서 물들은 비명을 지르곤 했다

    새가 날아간 듯 풀들이 놀라 눈을 뜨지만

    그들은 아무런 장비가 없는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들

    구불텅한 달걀 외피 모양의 잎사귀뿐

    아무리 수많은 햇살이 하늘에서 쏟아지고 있어도

    내게 필요한 면적은 다만 나의 잎사귀 형상뿐

    저 무량의 빛들이 다 받아야 할 건 아니다

    내 줄기 속에 한 줌 쯤의 어둠이 있다고 말하지 마라

    죽음이 숨어 있다고 예측하지 마라

    나는 일년초, 나는 절대 너희와 월동하지 않는다

    보라, 나는 죽어서 건너온다 너희에게

    눈도 뜰 수 없는 딱닥한 땅속 겨울의 동결 속으로

    돌아가리란 이것만 기억한다, 흙과 뿌리

    한낱 생장점과 기억의 무늬들

    언제나 내 잎사귀의 면적에만 햇살이 들이친다

    그리고 가끔 어두워지고 밝아지곤 하지만

    내 가느다란 피막이 감각의 구멍을 통해 느끼길

    잠깐 여보세요, 조금만 비켜서주시지 않겠습니까

    ☞ 소심한 청유형의 시 제목이 ‘달개비의 사생활’을 압도하고 있는 이 시는, 달개비의 입을 빌려 달개비로 은유된 이 세상 잡초이거나 잡초 같은 존재들을 변호해주기로 작정한 듯 시종일관 연민과 자족과 자기긍정을 반복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달개비의 그 작은 잎사귀만큼의 빛마저도 스스로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이다, 끝 행의 ‘잠깐 여보세요, 조금만 비켜서 주시지 않겠습니까’의 ‘조금만’은 쏟아지는‘무량의 빛들’ 속에서 내게 꼭 필요한 ‘내 잎사귀의 면적’만큼의 빛마저도 누군가(지배자)가 막아서서 비껴서주지 않으면 잃을 수밖에 없는 피동체로서의 달개비의 비극성을 견인하는 핵심어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조금만’에 웃고 우는 ‘달개비의 사생활’은, 장미꽃 그늘에 댓잎처럼 새파랗게 솟은 잡초들의 사생활이거나, 단두대 같은 우리에 갇힌 채 시시때때 몸무게를 불리고 있는 뭇 생명들의 사생활이거나, 하루 종일 빛도 별도 들지 않는 곳에서 밥을 벌고 꿈을 버는 사람들의 사생활이거나, 주말 저녁마다 TV 앞에서 기도처럼 복권을 긁는 사람들의 사생활이거나, 불볕 쏟아지는 광장에서 ‘조금만 비껴서주세요’ 목이 터져라 애걸하는 사람들의 사생활이 될 것이다. 조은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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