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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현감 연암 박지원의 지방행정- 김태희(다산연구소장)

  • 기사입력 : 2018-06-2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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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자치단체장과 의원을 뽑는 선거가 끝났다. 남북관계와 북미 회담이 너무 압도적인 이슈였고, 야당은 리더십을 잃고 지리멸렬했다. 선거 결과는 대략 행정부에 힘을 실어주고 야당의 각성을 촉구하는 의미로 읽을 수 있겠다. 그런데 지방선거는 어디까지나 지역의 일꾼을 선출한 것이다. 이제 지역의 일이 과제이다.

    연암 박지원이 안의(安義) 현감에 임명됐다(1791). 그때가 55세로 상당히 늦은 나이였다. 이미 <열하일기>로 이름을 알린 바 있지만 과거 시험과는 무관하게 살았던 사람이다. 뒤늦게 관직을 얻고 급기야 지방관으로 발령이 난 것은 모두 정조의 배려였다. 연암은 안의에 부임해 몇 가지 공사를 했다.

    방치해 폐허가 된 관사를 정돈하고 손질했다. 누각 옆에는 연못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와서 보고는, 연못은 전에 없었고 누각은 전에 있었던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서 말했다. “누각이 날개를 단 듯, 연못에서 솟아나왔다.” 담 밖에 100자 높이의 오동나무가 있어 누각의 이름을 ‘백척오동각’이라 지었다.

    연암은 말했다. “먹던 장도 그릇을 바꾸면 입맛이 새로워지고, 다니던 길도 환경이 달라지면 보는 마음과 눈이 달라진다.” 연못을 새로 만들자 원래 있던 누각이 새로 생긴 듯 살아났다. 정치도 그렇지 않을까. 전임자가 한 것을 모두 부정하는 것은 득책이 아니다. 한 가지만 잘 바꿔도, 나머지 기존의 것이 함께 살아나고 새로워질 수 있다.



    백척오동각의 남쪽 집을 ‘공작관’이라 이름을 붙였다. 경관과 전망이 계절과 위치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초목을 심어 봄여름에는 병풍이 되고, 가을겨울에는 울타리가 되게 했다. 문을 달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입구를 만들었다. 담을 뚫어 도랑물이 흘러들어와 모였다가 굽은 물길을 따라 흘러나가게 했다. 그래서 같은 집에서도 경관이 달라지고, 자리를 옮기면 경관이 바뀌게 된 것이었다.

    연암에게 공작새는 사물의 인식과 미의식에 깊은 영감을 주었다. 연암이 중국에 가서 처음 공작새를 보았는데, 공작새가 활짝 날개를 펴면 깃털의 색깔이 다채롭고 빛깔이 찬란했다. 연암은 말했다. “글을 쓰면서 종이와 먹을 떠나지 못한다면, 아언(雅言)이 아니요, 색깔을 논하면서 마음과 눈으로 미리 정한다면, 정견(正見)이 아니다.” 연암은 눈으로 보고도 다양한 차이를 살피지 못하고 형용하지 못하는 것은 꽉 막힌 마음 때문이라며, 이를 경계한 것이다.

    연암은 관아의 지저분한 곳을 정리하고 집을 지어 ‘하풍죽로당’이라 이름을 붙였다. 하풍은 연꽃 향기, 죽로는 대나무 이슬이란 뜻이다. 후임자가 이 집에 거처하면서, 연꽃 향기가 바람을 타고 멀리 퍼지는 것과 대나무 이슬이 고루 적신 것을 보고, 정사도 그렇게 두루 고르게 베풀기를 기대한 것이다.

    연암의 정신이 담긴 이런 건물들을 지금은 볼 수 없다. 다만 기문을 통해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연암은 일찍이 중국에 가서 수레와 벽돌과 같은 제도를 주목했다. 또한 중국 민가의 살림살이가 넉넉한 것을 보며 감탄했다. 연암이 <열하일기>에 기록한 이러한 견문들을 안의에서 일부나마 시행해보았던 것이다.

    지방의 정치와 행정에서도 중앙의 힘이 압도적인 것이 현실이다. 지방선거의 현수막에 일부 여당 소속 후보가 ‘힘 있는’이란 수식어를 붙인 것은 민망한 모습이었다. 자원과 인재의 배분을 중앙에서 상당부분 결정하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긴 하지만,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지방의 힘을 길러야 한다.

    지방관 연암 박지원의 말을 빌려, 새로운 지방자치행정의 임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제언해본다. 새로운 제도와 기술도 과감하게 도입해보고, 한 가지를 바꾸어 기존의 여러 가지를 새롭게 해보세요. 서울을 모방한 천편일률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다양한 모습을 펼쳐 보세요. 연꽃 향기가 바람에 실려 넓게 퍼져 나가듯, 대나무의 아침 이슬이 고르게 초목을 적시듯 현장의 민생을 챙겨 보세요.

    김 태 희

    다산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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