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9월 25일 (화)
전체메뉴

[사람속으로] 군무원 출신 소설가·싱어송라이터 이인규 씨

“삶의 경험 글로 쓰고 삶의 정서 노래로 부릅니다”

  • 기사입력 : 2018-06-21 22:00:00
  •   
  • 그는 산청군 깊은 골짜기에서 아내와 아들, 딸과 살고 있다. 대학생 아들과 중학생 딸이 등교하고 아내가 일터로 나가면 그는 책상 앞에 앉는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꼬박 글을 쓰고 작곡을 하고 작사를 한다. 소설가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이인규(56)씨. 그는 지역에서는 드물게 삶의 경험을 글로 쓰는 사람, 삶의 정서를 노래로 만드는 사람이다.

    먼저 짧은 자기소개를 부탁했다. “저는 부산에서 태어나 자랐고, 1981년에 명지대에 들어가면서 창작에 발을 들여 놓았습니다. 명지대에 들어간 이유는 단 하나, 음악 때문이었죠.” 순전히 통기타에 미쳐서였다. 명지대는 이문세, 심수봉, 김학래, 임철우 등 기라성 같은 가수들을 배출했고, 그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하지만 1981년은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이듬해였고 수업은 파행이었다.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없었다. 혼란하고 어둡던 시대였다. “당시 4학년이었던 이문세씨를 잠깐 만나 봤죠. 그것으로 명지대와의 인연은 끝이었습니다. 곧 학교를 중퇴하고 군대에 갔습니다.” 제대 후 경성대에 입학했다. 통기타를 다시 잡고 동아리 ‘메아리’에 들어가 곡을 창작하고 부르기 시작했다.

    메인이미지
    군무원 출신 소설가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이인규씨가 산청군 자택 다락방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먹고살아야 하니 졸업 후에는 공무원 시험을 봤다. “교정직에 응시를 했어요. 그런데 웬걸, 필기시험에 붙어서 면접을 보러 가서 아차했지요. 저는 글자 고치는 교정(校正)을 생각했었거든요. 그게 교화를 의미하는 교정(矯正)인 줄 몰랐다니까요, 하하.”

    오독(誤讀)에 말미암아 얼결에 얻게 된 직장이어서 그랬을까. 이씨는 부산교도소에 발령받아 1년 정도 근무하고 미련 없이 옷을 벗었다. 곧이어 정신병원에서 보호사로 2년간 근무하기도 했다. “교도관 출신을 우대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습니다. 그곳에서 간호사였던 아내를 만났어요.”

    이후 병원을 나와 해군 군무원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20년간 재직했고 2012년 명예퇴직을 했다. 산청으로 들어오기 위해서였다. “아내와 결혼할 때 했던 서약이 있었어요. 직장생활 어느 정도 한 뒤엔 귀촌해서 산다는 약속이었죠.” 그는 약속을 지켰다. 연고도 없는 산청으로, 그것도 첩첩산중을 찾아들어갔다. 주변에 이웃들이 조금씩 생기기는 했지만 이씨의 집은 여전히 해가 지면 거대한 지리산 그림자에 휘감기는 적막강산이다.

    글쓰기에 대한 열망은 대문호 괴테가 심어주었다. “초등학교 때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받은 감동이 어마어마했어요. 거듭 다시 읽으면서 나도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꼭 쓰겠다고 다짐했죠.” 직장생활 중에도 습작을 계속했다. 퇴근하면 글을 붙잡았다. 2007년 공무원문예대전에서 소설 ‘아름다운 사람’으로 입상하고, 이듬해 소설 ‘내 안의 아이’로 응모 10년 만에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이후 지금까지 2009년 ‘내 안의 아이’, 2012년 ‘지리산 가는 길’, 2014년 ‘아름다운 사람’, 2015년 ‘동굴 파는 남자’ 등 꾸준히 책을 펴냈다.

    메인이미지


    “제가 교도관 생활을 1년 남짓하고 그만두게 된 이유가 있었지요.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을 때예요. 부산 일대에 퍼져 있던 칠성파, 서면파, 영도파 등등 조직폭력배들이 대거 교도소에 들어왔습니다. 당시 부산교도소는 전과 3범 이상이 재소하는 곳이었어요. 그러니 다들 흉악범에 속했죠. 이때 한 젊은이가 폭력배 사이에 섞여 들어왔는데 선비 같은 분위기에 늘 벽을 보고 명상에 잠겨 있곤 했죠. 그런데 죄명은 살인죄였고요. 살인을 할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하는 호기심에 조금씩 말을 트고 가까워졌습니다. 속마음도 이야기하는 사이가 되면서 저랑 동갑내기에, 대학을 중퇴했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평범한 젊은이라는 걸 알게 됐죠. 결혼을 약속한 애인이 있었는데, 약혼녀의 이복오빠를 살해했더라고요. 이복오빠가 악혼녀 월급날만 되면 찾아와서 돈을 갈취해 가는 걸 보고 참다 못해 엉켜 싸우다 그만 사고가 났던 거죠.”



    그러던 어느 날 젊은이는 이씨에게 몸져 누운 홀어머니를 한 번만 뵙고 싶다고 간청한다. 이씨는 위험천만한 꾀를 냈다. 치과진료를 받는다는 명목으로 그를 병원으로 데려간 뒤 풀어줬다. 어머니를 뵙고 다음 날 아침까지는 꼭 교도소로 돌아오겠다는 약조를 받았다. “탈주를 한 것으로 가장을 해야 했어요. 그래서 얼굴을 한 대 치고 도망가라고 했지요. 안경도 부러지고 얼굴에 멍이 들었어요. 그 지경으로 교도소로 복귀했더니 상부에서 저더러 옷을 벗든지, 청송으로 근무지를 옮기든지 둘 중에 고르라는 거예요. 그래서 옷을 벗어 버렸지요.”

    이 일은 훗날 소설 ‘아름다운 사람’으로 재탄생됐다. 이후 젊은이가 복역을 마치고 출소한 후 이씨를 수소문했고, 직접 그를 만나러 갔던 이야기까지 모두 소설의 모티브가 됐다. 이렇듯 그의 글들은 모두 그가 몸소 겪은 범상치 않은 경험과 마음에 담았던 애잔한 정서가 토대를 이루고 있다. 이번 달에는 장편소설 ‘여름’ 출간을 앞두고 있다. 이번 소설은 경장편 2편을 엮었다. “사실은 이번에 새로운 도전을 했어요. 여름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하나는 추리소설, 하나는 판타지 소설을 써서 함께 엮었습니다. 이전까진 제 경험에 바탕을 뒀다면 이번 신작은 상상에 기반한 것이죠.”

    메인이미지
    이인규씨가 자택 다락방에서 자신이 쓴 책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곧 디지털 앨범도 나온다. 작사·작곡을 쉬지 않았던 그의 첫 앨범이다. 타이틀 곡 ‘비와 그대’를 비롯해 ‘빨간 우산과 소녀’, ‘오선지에 감춰진 슬픔’, ‘숱한 상념은 고독 되어’ 등 서정성 짙은 자작곡들이 실렸다. 아들과 딸을 모델로 탄생을 축하한 ‘생일 축하해요’ 라는 노래도 실었다.



    “창작자들이 흔히 그렇듯 저도 처음에는 창작을 통해 각광받을 꿈을 꿨죠. 그런데 지금은 자신의 부조리, 불합리를 아는 사람만이 창작을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똑바로 직시하고 나니, 세간에 오르내리고 각광받는 것과는 상관없이 제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책 내고 음반을 내겠다는 20대의 꿈들을 모두 이뤘거든요.”

    꿈을 이룬 그는 이미 새로운 창작의 영역에 도전하고 있었다. “귀촌 후에 산청·함양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민간인학살사건이라면 도내에서 거창사건이 주로 다뤄지는데, 산청·함양사건도 어마어마한 학살이 자행된 역사거든요. 그 참혹함과 사실성을 소설로 다루고 싶어요. 작사·작곡을 통해서는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요. 빈부격차 등 사회적 문제가 다양하게 드러나는 시대잖아요. 창작의 범주를 계속해서 확장시켜 나가려는 시도를 하려고 합니다.”

    김유경 기자 bora@knnews.co.kr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김유경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