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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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 6월 항쟁

잊지마라, 뜨거웠던 그 거리
기억하라, 열망했던 그 순간
[창간 72주년 기획- 무학과 함께하는 온고지신] 6월 항쟁

  • 기사입력 : 2018-06-25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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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6월 15일 경남대 학생들이 기말시험을 거부한 채 농성을 벌이다 교문 밖으로 진출, 경찰과 대치하다 최루탄에 맞서 화염병과 투석전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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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6년 5월 10일 마산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신민당직선개헌추진위 경남지부 결성대회. 마산 산호동 강삼재의원 사무실에서 개헌 현판식이 끝난 뒤 학생들이 개헌을 요구하면서 도심 진출을 시도했으나 전투경찰에 의해 모두 강제해산됐다. 이날 행사장에는 수만명의 시민이 몰렸다. 경남대와 경상대·창원대·울산대 등 4개 대학 학생들이 대회장 주변에서 연합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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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6년 5월 10일 마산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신민당직선개헌추진위 경남지부 결성대회. 마산 산호동 강삼재의원 사무실에서 개헌 현판식이 끝난 뒤 학생들이 개헌을 요구하면서 도심 진출을 시도했으나 전투경찰에 의해 모두 강제해산됐다. 이날 행사장에는 수만명의 시민이 몰렸다. 경남대와 경상대·창원대·울산대 등 4개 대학 학생들이 대회장 주변에서 연합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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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6월 15일 경남대 학생들이 기말시험을 거부한 채 농성을 벌이다 교문 밖으로 진출, 경찰과 대치하다 최루탄에 맞서 화염병과 투석전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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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6·26국민평화대행진 이후 마산 시내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경찰과 대치한 시민·학생들이 경찰의 최루탄에 흩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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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6년 5월 10일 마산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신민당직선개헌추진위 경남지부 결성대회. 마산 산호동 강삼재의원 사무실에서 개헌 현판식이 끝난 뒤 학생들이 개헌을 요구하면서 도심 진출을 시도했으나 전투경찰에 의해 모두 강제해산됐다. 이날 행사장에는 수만명의 시민이 몰렸다. 경남대와 경상대·창원대·울산대 등 4개 대학 학생들이 대회장 주변에서 연합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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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시내 중심가인 중앙로터리에서 경찰과 대치한 시위대. 1987년 6월항쟁 당시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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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6월 16일 경상대 학생들이 시내 거리로 진출, 진주교에서 경찰과 대치하며 격렬한 투석전을 벌여 시가지가 폐허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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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6월 16일 경상대 학생들이 시내 거리로 진출, 진주교에서 경찰과 대치하며 격렬한 투석전을 벌여 시가지가 폐허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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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6월 26일 마산서 열린 국민평화대행진 최종 집결지로 몰려드는 2만여명의 시민·학생들이 비폭력을 외치며 6호 광장으로 몰려가다 전경들을 완전히 에워쌌으나 최루탄에 의해 저지됐다.




    어느덧 6월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북미정상회담에 지방선거, 러시아 월드컵 등 많은 일들이 2018년 6월을 다이내믹하게 수놓았습니다.

    1987년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물론 당시는 엄혹한 시절이었고, 즐겁고 행복한 일들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해 6월이 있지 않았다면 올해 6월도 없었으리라는 점에서는 모두가 수긍할 것입니다.

    그해는 전국적으로 6월 항쟁이 일어난 해였습니다.

    1987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4·13호헌조치’ 발표 후 6월 10일부터 29일까지 전국적으로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죠.

    10일 박종철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민주헌법쟁취 범국민대회가 전국에서 열렸습니다.

    경남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 기간 마산 3·15의거탑 앞에서 집회를 마친 시위대가 마산운동장 쪽으로 진출하자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 가스로 대통령배축구대회 경기가 중단돼 3만여명의 관중이 시위대에 합류하기도 했습니다.

    진주 경상대 학생들은 고속도로에서 가스차량 탈취 시위를 벌이면서 고속도로가 마비되기도 했습니다.

    29일 항쟁이 최대 규모에 이르자 민정당 노태우 대표는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이는 6·29선언을 발표하며 항쟁은 잦아들었습니다.

    김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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