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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눈치 보는 ‘정의’- 이현근 사회부 부장대우

  • 기사입력 : 2018-06-2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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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대부분 법원 앞에는 눈을 가리고 오른 손에는 칼을, 왼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는 디케의 여신상이 서 있다. 칼은 단죄, 저울은 엄정한 정의를 상징하고 있다. 눈을 가린 것은 판정에 앞서 사사로움에 얽매이지 않고 공평성을 가지라는 의미다. 우리나라 대법원 청사 로비에는 왼손에 법전, 오른손에는 저울을 든 채 눈을 뜨고 있는 ‘정의의 여신상’ 조형물이 있다. 디케의 여신상과 달리 눈을 뜨고 있다.

    ▼최근 법관을 사찰하고 재판을 거래했다는 사법농단 의혹으로 사법부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한 조사에서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판결들을 청와대와의 거래 수단으로 삼았다는 의혹과 정황도 제기됐다. 여기에 사법농단의 중심에 서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PC 하드디스크를 지우면서 증거인멸 가능성이 제기돼 사법 불신에 기름을 붓고 있다.

    ▼사법부는 사회 갈등을 해결하는 최후의 보루다. 솔로몬의 지혜로 억울한 일이 없도록 공평하게 해결해 달라는 국민들의 염원이 담긴 곳이기도 하다. 애석하게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5년 발표한 보고서에는 우리 국민 중 ‘사법부를 신뢰한다’는 응답이 27%로 OECD 42개국 가운데 39번째로 적었다. 재판 결과에 불복하는 비율도 높아져 2016년 형사사건의 항소율은 42.97%로 2012년 29.5%보다 껑충 뛰었다.

    ▼판검사는 한국사회에서 성공의 상징이다.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는 신분 수직 상승의 길이라 여기고 수많은 젊은 청춘들이 사법고시 시험에 매달려 왔다. 판검사의 출발이 ‘정의’와 ‘불의’가 아닌 신분 상승의 기회로 여기는 풍토는 결국 권력과 금력 결탁으로 이어지며 불신을 자초했다. 눈을 감은 디케의 여신상과 달리 우리나라 대법원 로비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이 눈을 뜨고 있는 것은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보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곳저곳 눈치를 보기 위한 것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정말 정의는 죽었을까.

    이현근 사회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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