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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대동강 부벽루에서- 변종현(경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 기사입력 : 2018-07-0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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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대동강변 영명사(永明寺)에 있는 부벽루(浮碧樓)는 밀양의 영남루(嶺南樓), 진주의 촉석루(矗石樓)와 함께 조선의 3대 누각으로 이름이 났다. 부벽루에서는 많은 시인들이 시를 지었는데 고려 후기 이색(1328~1396)이 젊은 시절 원나라에서 돌아오는 도중 이곳에 들렀다가 지은 시가 이름이 났다.

    이색은 이곡의 아들이며, 이제현의 문인이며, 6000여 수의 시를 남긴 대문호이다. 26세에는 정동행성(征東行省)의 향시에 1등으로 합격하고 서장관이 되어 원나라에 갔다. 40세에는 성균관의 대사성(大司成)이 되어 김구용·정몽주·이숭인을 학관으로 채용하여 유학의 보급과 성리학의 발전에 공헌했다.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자 이성계의 세력을 억제하려다가 장단으로 유배되었고, 1392년 정몽주가 피살되자 이와 관련해 금주로 추방됐다. 이성계의 출사 종용이 있었으나 끝내 고사하고 여강으로 가던 도중 일생을 마쳤다.

    그럼 <浮碧樓(부벽루), 부벽루에서>를 살펴보자.



    昨過永明寺(작과영명사) 어저께 영명사에 찾아왔다가

    暫登浮碧樓(잠등부벽루) 잠깐 동안 부벽루에 올라와 보니

    城空月一片(성공월일편) 성은 빈 채 한 조각 달만 떠 있고

    石老雲千秋(석로운천추) 바윈 묵어 천년 두고 구름뿐인데

    麟馬去不返(인마거불반) 기린마는 떠나간 뒤 안 돌아온 채

    天孫何處遊(천손하처유) 천손은 어느 곳에 노니시는가?

    長嘯倚風(장소의풍등) 돌계단에 기대 서서 길게 읊자니

    山靑江自流(산청강자유) 산 푸르고 강물만 절로 흐르네.



    이 시는 이색이 23세 때 부친상을 당해 원나라 국자감에서 돌아오던 도중 지은 것이다. 시인은 금수산 영명사 부벽루에 올라가 동명왕에 얽힌 고사를 떠올려보며, 자연의 유상함과 역사의 무상감을 대비시키면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원적인 한(恨)과 슬픔을 잘 표현했다.

    어저께 영명사를 찾아왔다가 잠깐 동안 부벽루에 올라가 보니, 성은 텅 빈 채 한 조각 달만 떠 있고, 조천석(朝天石)은 빛이 바랬는데, 구름은 천년을 두고 하늘가에 떠 있다. 그 옛날 주몽은 조천석에서 기린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는데, 천손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탄식을 하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아쉬운 마음에 돌계단에 기대서서 길게 시를 읊조리고 있으니, 시인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산은 절로 푸르고 강도 절로 흘러만 가고 있다. 예로부터 평양은 고조선 이래 기자(箕子)의 팔조 금법(禁法)이 시행되고, 고구려 장수왕 때는 수도를 평양으로 옮길 정도로 중요한 도시적 기능을 수행했다. 그러나 현재는 원나라 지배를 받는 고려의 국력을 안타까워하면서, 과거 화려했던 민족문화에 대한 그리움을 표출해내고 있다.

    변종현 (경남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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