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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나비의 꿈- 김정민 편집부 차장대우

  • 기사입력 : 2018-07-0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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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저, 백년/ 나 김복득 이 생에 와/ 꼭 백년을 살고 오늘에사 간다/ 장맛비 몰고 태풍 더불어 간다/ 조국이 힘이 없어/ 강토가 짓밟힌 금수강산 산천경계 다 태우고도 모자라서 봉선화 같았던/ 처녀였던 우리가 내가 전쟁에 미쳐 날뛰던 짐승들의 성노리개로 끌려가서는/ 지옥보다 더한 치욕의 나날을/ 죽지 못하여 살아야 했으니, 견뎌야 했으니/ 어찌 다 말로 하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득 할머니의 ‘추모식’에서 유귀자 시인이 낭독한 조시(弔詩)의 일부다.

    ▼경남 최고령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득 할머니가 지난 1일 향년 10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음력 1918년 12월 17일 통영 태평동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22살 되던 해에 ‘공장에 취직시켜 주겠다는’ 말에 속아 필리핀 등으로 끌려간 뒤 7년 동안 위안부 피해자로 고초를 겪었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국내외 증언집회와 수요시위 등에 참여하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위안부 문제가 사회적으로 떠오른 건 1990년이다. 그 후 1991년 8월 고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증언한 뒤 약 200명에 이르는 피해자들이 정부에 신고를 했다. 그 뒤 각 시민단체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나섰고, 위안부 할머니들 역시 활발한 증언활동을 통해 실상을 알리고자 노력했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지난 2015년 박근혜 정부가 일본과 체결한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중대한 흠결이 있다”며 무력화했지만, 일본은 “종결됐다”는 입장이라 위안부 문제는 답보 상태다.

    ▼김복득 할머니의 별세로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27명으로 줄었다. 남아있는 피해자들마저도 고령과 병환으로 언제 우리 곁을 떠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이 사죄만 한다면 나는 편히 나비가 되어 날아갈 수 있겠다.” 김복득 할머니가 살아 있을 당시 수없이 외쳤던 말이다. 이미 눈을 감은 위안부 할머니들과 생존자들의 상처를 보듬고, 이들의 마지막 소망을 들어주는 일은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다.

    김정민 편집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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