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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창원, 문학으로 꽃피다- 조재영(시인)

  • 기사입력 : 2018-07-0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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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시 부문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한 시기는 1992년이었고 20대 초반이었다.

    고교시절까지는 글쓰기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더라도 그것은 하나의 막연한 꿈이었고, 실제로 글을 쓰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학교가 그러하듯이 내가 다녔던 마산의 고등학교에서도 교지를 발행했고, 학생들의 작품이 문예란에 실렸다.

    교지에 실린 급우들의 시를 보면서, 그러한 글을 적었던 친구의 세계와 나의 세계는 많이 다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친구와 현실에서는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차원이 다른 세계에 있는 듯했다. 더구나 산문이 아니고 운문을 쓴다는 것은 특별하게 글쓰기를 지도받은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무척 생소하고 경이로운 세계였다.

    그러다가 대학 신입생 시절, 정말로 우연히 친구를 따라 문학동아리에 가입한 것을 계기로 글을 쓰게 되었고, 시로 데뷔를 하게 되었다. 자신의 세계를 자신의 방식으로 쓰는 글쓰기의 즐거움을 느낀 후 개미처럼 노력한 결과였다.

    데뷔한 그해에 처음으로 문인협회에 가입을 하게 되었다. 여러 문학단체들이 있지만 문인협회가 우리 지역을 대표하는 문학단체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3·15의거 기념 전국백일장, 고향의 봄 백일장, 군항제 백일장 등등. 우리 지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한 번씩은 참가하거나 들어보았을 문인협회의 행사들이다. 아마도 이 행사들에는 한국 문단을 빛낼 미래의 작가들도 분명 참가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문인협회 활동을 비교적 오래 하게 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있있다.

    흰 두루마기를 입고 하얀 백발을 하신 설창수 선생님, 수필가보다도 교수님으로 기억되었던 신상철 선생님, 잡지 속의 모델 같은 포즈를 지니셨던 서인숙 시인, 그리고 언제나 두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셨던 황선하 시인. 또 있다. 언제나 코끝이 빨갛던 최명학 시인은 늘 코맹맹이 소리를 내셨다. 어느덧 최명학 시인이 타계하신 지 10년이 지나고 2016년에 그 시비를 창원 용지공원에 건립하게 되었다. 한동안 같이 활동하던 분이 시비라는 상징물로 남겨지는 것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문학 활동의 현재는 좋든 싫든 미래에 과거의 기록으로 남겨지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창원시립 마산문학관에서 17일부터 ‘창원시 문인협회 태동기 자료전’이 개최될 예정이다. 행사의 실무자로서 전시에 사용될 자료들을 살피면서 새삼 창원의 작가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손을 대면 바스락거릴 것 같은 오래되고 낡은 육필원고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발행된 동인지들, 출판기념회를 위해 모인 흑백 사진 속의 인물들. 그 속에는 오래전에 빛난 문학의 열정들이 고스란히 숨어 있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그 자료들을 보면서 그 당시의 문단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내가 느꼈던 그들의 열정과 가슴 두근거림을 방문하는 사람들도 같이 느꼈으면 한다. 오래도 전에 문학의 꽃을 피운 사람들과 공감하며 말이다.

    조재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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