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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단상- 박환기(의령군 부군수)

  • 기사입력 : 2018-07-0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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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가야사 연구·복원사업이 국정과제로 채택돼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져 오던 차에 가야문화권에 속하는 지역인 의령군에 지난해 연말 부군수로 부임해 왔다.

    문화재담당 부서로부터 의령지역의 가야사에 대한 보고와 가야유적지 발굴 현장 방문 등을 통해 가야를 접해 왔다. 그들이 남긴 흔적들이 결코 삼국에 뒤처지지 않았음에 놀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국에 가려 가야가 너무 조명받지 못했음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동안 가야사에 대한 연구가 부진한 근본적인 이유는 일제 식민사관에서 출발한 이른바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과 관련이 깊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가야의 별칭은 임나(任那)이며, 가야지역은 고대 왜국의 신공황후(神功皇后)가 369년에 군사를 보내 정복한 이후 신라에게 빼앗기는 562년까지 왜 왕권의 통치기관인 임나일본부의 통제 아래 있었다. 임나일본부설은 일제강점기 한반도 지배를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됐고, 해방 이후에도 한국 고대사 연구자들이 꺼려하고 금기시하는 분야가 됐다.



    그러나 1980년 이후 가야지역에 대한 활발한 연구로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임이 밝혀졌으며,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었던 가야사의 실체도 조금씩 드러나게 됐다.

    최근 언론보도와 고고학적 조사 자료를 보면 가야는 우리가 알고 있는 6가야가 전부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경주를 제외한 영남 일대는 물론 남원, 장수, 임실, 순천, 광양 등 전라도 일부 지역까지 가야권에 포함된다. 최소 20여 개의 크고 작은 가야가 존재했던 것이다.

    필자가 현재 몸 담고 있는 이곳 의령 지역만 하더라도 의령읍 일대의 ‘임례국’과 부림면, 지정면 일대의 ‘사이기국’이라는 두 개의 가야 정치체가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야사의 온전한 복원이 우리의 민족사를 바로 세우는 것이며, 일제에 의한 역사 왜곡에 대처하는 길이다. 비록 통일된 왕조로서의 나라 이름으로는 기록되지 못하였지만 지역 곳곳에서 마을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는 가야. 사라졌지만 후세에 은둔의 역사 가야로 기억되길 소망했던 그들의 바람은 아닐는지?

    박환기 (의령군 부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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