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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정치는 허업(虛業)이라는데···- 이상권(정치부 서울본부장·부장)

  • 기사입력 : 2018-07-1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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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고성쇠는 거역할 수 없는 순리다. 인생사 마찬가지다. 대숲에 일렁이는 바람처럼 잠시 머물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자수성가한 한 소년 얘기다. 그는 1952년 통영시 산양읍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가정형편에 초등학교를 3곳(유영·충렬·통영)이나 전전하다 5학년 때 빈손으로 상경했다. 서울 불광동 어린이보호시설에 몸을 맡기고 청계천 피복공장 소년노동자의 삶을 시작했다. 어린 나이로선 감당하기 힘든 밥벌이의 고단함에 짓눌렸지만 배움의 열정은 간직했다. 서울 안산초등학교 졸업 후 검정고시를 거쳐 또래보다 1년 늦게 대경상고에 입학했다. 중앙대 영어교육학과에 진학했고 과외지도 등으로 학비를 벌었다.

    마산 제일여중, 서울 장훈고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무일푼으로 상경한 소년노동자가 교사가 됐으니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그는 안주하지 않았다. 30살에 미국 캔자스주립대학교로 유학길에 올랐다. 국가장학금을 받은 게 전부였다. 간호사인 부인의 수입으로 가난한 유학 생활을 버텼다. 첫 아이가 태어나 부인이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 힘들 때 옆집에 살던 이한구 전 의원 가족의 도움을 받았다. 이 전 의원은 박사 과정 유학생이었다. 인연은 훗날 그를 정치권으로 이끌었다.

    가난은 그를 억척스럽게 단련시켰다. 교육행정학 석·박사 학위를 4년 만에 따 주변을 놀라게 했다. 귀국 후 한국과학기술원(KAIST)·중앙대 교수 등을 지냈다. 2001년 49살에 최연소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 자리에 올랐다. 재임 중 한나라당 비례대표에 발탁돼 제17대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18대 총선 때는 40여년 만에 배곯던 고향으로 돌아와 국회의원이 됐다. 당시 선거를 불과 20여 일 앞두고 공천을 받은 그는 지역구 재선을 노리던 현역의원을 꺾는 기염을 토했다.

    지역구 출마 직전 그는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교육부 장관직 제의를 받았다. 교육 전문가로서 꿈꿨던 자리였지만, 이번 기회가 아니면 고향에서 국회의원 도전이 어렵다고 판단해 고사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처럼 청계천 소년노동자 출신인 그를 총애했다.

    잘나가던 그에게도 시련이 닥쳤다.

    2012년 19대 총선을 약 2개월 앞두고 뇌혈관이 막혀 쓰러졌다. 의사도 놀랄 정도로 기적처럼 목숨을 건졌다. 선거운동보다 병석에 있던 시간이 많았지만 61.4%의 득표율로 3선 고지를 밟았다. 이후 국회 예결위원장과 여당 사무총장직을 맡아 전성기를 구가했다. 여기에 더해 20대 총선에서는 무투표 당선되는 진기록을 세우며 4선 의원으로 승승장구했다.

    기쁨은 여기서 마침표를 찍었다.

    당선되자마자 보좌진 급여 유용과 고교 동문에게서 불법 후원금을 받은 등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지난 6일 열린 항소심에서도 1심과 같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의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앞서 지난달 26일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소년노동자에서 4선 국회의원까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환희를 맛봤던 그도 불명예 퇴진을 목전에 둔 신세가 됐다.

    입지전적 인물은 자유한국당 이군현(통영·고성) 의원이다.

    지난달 고인이 된 ‘정치 풍운아’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평소 주변에 건넨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정치는 허업(虛業)이라네.”

    이상권 (정치부 서울본부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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