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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갑질과 가이 포크스 가면의 저항- 조광일(전 마산합포구청장)

  • 기사입력 : 2018-07-1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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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갑질 논란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조양호 일가 구성원 모두가 줄줄이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되고 있는 가운데 노동자들의 ‘갑질 근절 호소’가 끊이지 않는다. 대한항공 직원들은 저마다 가면과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인간답게 일할 수 있도록 근로여건을 개선해 달라”며 외치고 있다.

    가면은 예로부터 개인과 공동체의 억눌린 욕망이었다. 그래서 ‘가면을 쓴다’는 것은 ‘자신을 감춘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감정과 진실을 더 절실하게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 가면 뒤에 숨어 정의를 외칠 수밖에 없는지 애가 타고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정작 얼굴을 감춰야 할 자는 온갖 추행과 비리를 저지른 오너 일가 그들이건만, 아무런 잘못이 없는 직원들이 얼굴을 가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나를 슬프게 하는 건 헌법에 보장된 집회에서도 신분을 감춰야만 하는 직원들의 비통한 처지다. 집회에 참석한 한 노동자의 용기 있는 행동에선 비장감이 느껴졌다. “어용노조와 싸우다 진 패잔병으로 15년간 눈 감고 귀 닫고 살았습니다. 능력으로 직장생활합시다. 당당함에 저 하나를 추가합니다”라고 외친 뒤 그 자리에서 가면을 벗어던지는 것이었다. 지금껏 회사의 악랄한 감시 속에서 신분을 감추기 위해 가면을 썼었지만 스스로 그 굴레에서 벗어나 침묵을 깨는 순간이었다. 그 광경이 TV 화면에 클로즈업돼 내 눈앞으로 다가오자 찡한 감동이 가슴 깊숙이 밀려들어 왔다.

    개인에게 있어 가장 큰 두려움은 집단으로부터의 축출이다. 더구나 그들 대다수는 특정 회사에 고용된 노동자이기 이전에 한 가정의 가장들이다. 순응하지 않으면 회사에서 쫓겨나는 잘못된 기업문화가 그들을 가면 뒤로 밀어 넣었다.

    ‘물벼락 갑질’로 드러난 오너 일가의 밀수와 탈세 의혹 등 추한 민낯은 공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직원들을 닦달했으며, 무엇이든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다는 망상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재벌가의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갑질 패악은 ‘돈이면 다 된다’는 비뚤어진 천민자본주의가 낳은 병폐인 것이다.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존중받는 ‘인간의 존엄성’이다. 직장의 상사가 직무상 책임을 물어 부하직원을 나무랄 수도 있고 징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부하직원을 인격적으로 학대하거나 모독할 권한은 없는 것이다.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계는 사용자가 노동자의 노동력을 산 것일 뿐 인격을 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 모두가 가면을 벗어던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야말로 디스토피아적인 사회현상에 맞서는 덕목이 아닐까. 한 사람 한 사람의 용기 있는 ‘외침’은 썩고 부패한 것들을 밀어내고 모두를 인간답게 할 것이다.

    조광일 (전 마산합포구청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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