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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하면 되리라 - 박재삼

  • 기사입력 : 2018-07-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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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와 달, 별까지의

    거리 말인가

    어쩌겠나 그냥 그 아득하면 되리라.




    사랑하는 사람과

    나의 거리도

    자로 재지 못할 바엔

    이 또한 아득하면 되리라.



    이것들이 다시

    냉수사발 안에 떠서

    어른어른 비쳐오는

    그 이상을 나는 볼 수가 없어라



    그리고 나는 이 냉수를

    시방 갈증 때문에

    마실밖에는 다른 작정은 없어라.

    ☞ 알 수 없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광활한 세계를 읽는 방식으로‘아득하다’는 말만큼 근사한 표현이 또 있을까. 시인은 ‘해와 달, 별’ ‘사랑하는 사람’과의 ‘자로 잴 수 없’는 거리를 ‘아득하다’는 형용사로 묶어 놓았다. 그 아득하고 아득한 것들이 눈앞의 ‘냉수사발 안에 떠서/어른어른 비쳐오는’ 것을 ‘시방 갈증 때문에/ 마실밖에는 다른 작정은 없어라’라니! 어쩌면 세상 모든 그리운 것들은 아득함의 양식인지도 모른다. 눈앞에 어른거리지만 자로 잴 수 없는 아득함의 거리를 시로 재어보다 떠난 시인은 지금 아득함 어디쯤에 스며 있을까!

    자주 만나지는 못하여도 늘 시와 그리움으로 교감하던 사람들이 불현듯 아득함 속으로 떠나가 버리니 이 활기와 갈증의 여름날이 냉수사발 안에 어른거리는 그리운 얼굴처럼 서럽고 허무하다. 조은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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