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9월 21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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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문화- 방태진(마산지방해양수산청장)

  • 기사입력 : 2018-07-1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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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남단의 섬 청산도에 가면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초분이라는 독특한 형태의 해양장례문화가 있었다. 유교적 전통과 섬지방의 바다 특성과 결합된 우리만의 고유 장례관습으로 자세한 전통과 유래는 기억나지 않지만 바다에 나가 폭풍이나 풍랑을 만나 아들이나 동생이 먼저 죽거나 어른의 생사를 알 수 없을 때 먼저 시신을 섬지방에서 구할 수 있는 풀섶에다 쌓아 앞마당에 가매장을 해 놓는 것이다. 육신과 영혼을 분리시켜서 다시 본 매장을 한다는 전래도 있고 어른보다 먼저 돌아갔을 때 유교전통에 따라 순서를 맞추기 위함이라고도 하지만 주거하는 집 앞마당에다 시신을 안치해 놓았다는 사실에 섬뜩하면서도 삶과 죽음의 문턱을 한 공간 안에서 공유하고 있었다는 어촌문화를 몸소 체험한 적이 있었다. 그 밖에도 장례와 함께 생애 삼대의례인 출생과 혼인 그리고 어로요와 용왕제 등 일반 육상과는 다른 도서지방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문화가 있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우리의 섬지방과 어촌전통들은 배고파서 떠나고픈 대상으로만 여겨서인지 지금의 그곳은 전복양식 등으로 부유한 섬이 되었지만 현란한 양옥집과 아스팔트 도로 등 육상문화만이 잔뜩 진을 치고 있다.

    지금은 부두의 기능이 상실되어 도시민의 휴식공간으로 단장 중인 마산항 중앙부두의 경우에도 예로부터 아름다운 달빛이 바다를 수놓는다고 해서 월포해수욕장이라고 하였고, 주위의 동네 이름도 달 월(月)자가 들어간 동네가 월영동부터 시작해서 완월동에 이르기까지 이방인의 눈에 많이 들어오지만 달동네의 이미지가 싫어서인지 지금은 그 달빛의 흔적은 찾아 볼 수가 없다. 배고픈 시절 산업화를 위하여 천혜의 항만요지인 마산항을 고도로 활용하기 위한 목적에서 개발은 필연적이었고, 그 결과 전국 7대 도시로 명성을 드날렸지만 지금은 인근 도시의 거대화와 산업경기와 함께 침체일로에 직면해 있다고 해서 그때 그 시절의 역사와 문화마저 기억에 사라지게 해서는 다시 그 명성을 되찾기가 어렵다고 생각되는 것은 기우일까?

    중앙의 대자본이나 투자가 능사가 아니라는 것은 외국사례를 차치하고서도 국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우선 인사동 거리가 외부 거대자본이 들어와 토지나 부동산값은 폭등하였지만 정작 거리를 지키고 있었던 소소한 골동품가게는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고, 서울 삼청동 뒷길도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새로운 번화가로 자리 잡았지만 정작 골목을 채워주던 맛집의 향기는 더 이상 맡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서항지구 친수공간조성사업에서도 기본적인 골격 조성과 나무나 잔디밭 조성은 중앙정부가 담당하고, 세부적인 내용물 조성은 시민 스스로의 참여와 의견수렴을 통하여 제대로 된 바다와 문화가 있는 공간으로 꾸며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러한 움직임에 긍정적인 신호도 하나둘씩 전해 온다.



    우선 창원지역 문화단체에서 국내외 작가 스스로가 참여하는 활동공간을 구항만의 빈공간 활용 의사를 표명해 와서 작품 활동을 통한 시민참여와 공간꾸미기에 대한 조언을 해 줄 전망이고, 달빛바다 월포해수욕장의 복원에 대한 희망 의지도 시민들로부터 전해 온다. 완전 복원까지는 불가하다고 할지라도 옛 명성과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자연친화적이고 상징적인 복원은 가능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타진해 본다. 그리고 방재언덕쪽은 마산항을 상징하는 조명등대를 설치하고 마산항의 역사를 현대에 맞게 재조명하는 마산항 역사관 사업도 이어나갈 작정이다. 우리의 전통적인 어로요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힘든 삶의 현장을 극복하기 위한 노동요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직접 참여할 때 바로 그 참맛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어느 전문가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생각을 해 본다.

    방태진 (마산지방해양수산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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