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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이상권 정치부 부장

  • 기사입력 : 2018-07-1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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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과 40여 년 전만 해도 냉장고 있는 집이 드물었다. 반찬은 찬장에 넣고, 소쿠리에 담은 보리밥은 시렁에 얹었다. 여름에도 얼음 구경은 어려웠다. 손님이라도 찾아오면 양푼을 들고 얼음 가게로 달려갔다. 흰 무명실이 꿰어 있는 바늘을 얼음에 찍고는 무쇠가위로 바늘귀를 치면 얼음이 쩍하니 갈라졌다. 몇 번을 그렇게 하다 보면 비정형의 얼음 조각이 수북이 쌓였다. 숟가락으로 긁어낸 수박에 얼음과 사이다를 넣으면 더위를 날리는 별미를 맛볼 수 있었다.

    ▼옛날엔 얼음을 먹는 자체가 권력이었다. 중국에선 춘추전국시대부터 겨울에 산과 강에서 얼음을 떼어내 돌집에 보관했다. 이를 벌빙(伐氷)이라 했다. 벌빙은 고관대작에게만 허용돼 곧 출세로 통용됐다. 우리나라에선 고려 이후 국가가 관원에게 여름에 얼음을 배분했다. 이것이 반빙(頒氷)이다. 궁중과 종친, 당상관에게 우선 지급할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직급에 따라 분배량을 표시한 빙패(氷牌)도 지급했다. 이에 빙패는 위세를 견주는 징표였다.

    ▼‘삼국유사’에는 이미 신라 유리왕 때 얼음저장고(藏氷庫)를 지었다고 한다. 조선 시대 식례 등을 모은 ‘만기요람’에 따르면 한양에 얼음을 보관하는 동빙고와 서빙고를 운영했다. 동빙고는 제사용, 서빙고는 관리 공급용이었다. 서빙고에는 약 13만5000정(丁)의 얼음을 보관했다. ‘정’은 두께 4치(약 12㎝) 정도 얼음 덩어리다. 서빙고 얼음을 관료뿐만 아니라 활인서의 환자나 의금부 죄수에게까지 주었다고 하니 또 다른 나눔의 의미도 담겼다.

    ▼경남지역에 폭염특보가 발효됐다. 어제가 초복이었으니 ‘가마솥 더위’의 시작이다. 삼복에 ‘엎드릴 복 (伏)’자를 쓴 건 가을이 오다가 강한 더위에 굴복하는 의미라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얼음이 지천이고 냉방기도 곳곳에 갖췄으니 덥다고 무작정 엎드릴 상황은 아닌 듯하다. 얼음 한 조각 입에 물고 예전에는 아무나 못 누린 호사라고 위안 삼는다면 견디지 못할 더위도 없다. 세상사 마음먹기 나름이다.

    이상권 정치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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