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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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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후배 독서가들은 외롭지 않기를- 김종광(소설가)

  • 기사입력 : 2018-07-2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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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교로부터 ‘동문 선배와의 만남’에 초청받았다. 금의환향이라도 하는 듯해서 감사히 수락했다. 솔직히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묘한 자격지심에 휩싸였다. 내가 과연 ‘금의’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 만큼 뭐라도 이룬 자인가. 부를 만하니 불렀겠지 뿌듯하면서도, 진정 자식뻘 후배들 앞에서 떠들 주제가 되나 의심스러웠다.

    30년 후배들이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작가이면 모르겠는데, 나는 ‘듣보잡’ 소설가다. 책 좀 읽으시는 분들도 ‘20년 써서 20여 권을 냈다는데 처음 들어보고 처음 읽는다’고 하시니 말이다. 경제력, 신분, 지위 같은 세속적 기준이나 사회 기여도로 따진다면 더욱 후배들 앞에 설 자격이 없었다. 미미한 작가보다 구질구질하고 사회에 도움 안 되고 전망 없는 직업이 또 있을까. 내 또래인, 후배들의 부모님이 훨씬 말할 자격을 가졌다. 설마 롤모델이나 귀감을 바랐겠나, 고등학교 때의 나처럼 독서를 즐기고 작가를 꿈꾸는 학생들한테 작가가 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격려가 될 수 있을 거라고 합리화했다.

    30여명이 맞아주었다. 어쭙잖은 작가 선배를 만나겠다고 귀한 시간을 내준 학생들답게, 30년 전의 우리들을 보는 듯했다. 생각이 많아 뵈는, 책을 즐겨 읽고, 예술적 행위로 스트레스를 풀 것 같은, 언젠가는 작가를 꿈꿀 것 같은 아티스트형 아웃사이더들. 순전히 오해일지라도 후배들에게 동지애를 느꼈다.

    꾸준히 독서하면 의당 오지랖 넓게 이해하는 동시에 문제를 파악하고 의견을 세우고 내는 능력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 우리 기성세대가 미래세대에게 간절히 원하는 바다. 그 ‘비판정신과 창의력’이 출중할수록 따돌림받고 외로워지고 경제적으로 도태되는 것이 ‘불편한 현실’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후배들에게 보다 활발한 독서를 권장하기가 저어되었다. 차마 작가의 꿈을 응원하고 지지할 수도 없었다. ‘자기 계발서’처럼 뭐가 됐든 자기가 원하는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하면 기필코 된다, 꿈을 갖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이루어진다 말하면 편할 텐데, 불편한 현실을 밝히는 희망 의심형 소설을 써온 작가로서 희망의 전도사를 자처할 만큼 뻔뻔하지도 못했다. 두서없이 버벅댔다.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다. 여러분이 비판정신과 창의력을 포기하지 않으면 외로울 테다. 그런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지만, 어른들의 세상은 그런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물론 여러분이 우리 사회의 모순을 누구보다도 잘 알 테다. 두루 읽고 넓게 의심하고 세심히 표현하는 사람은 자꾸만 소외된다. 한 달에 한 권 읽는 독자로 사는 것도 벅찬 세상이니, 기어이 작가가 되고자 한다면 더욱 외로울 테다. 그렇지만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여러분처럼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 우리 사회가 이나마 강녕한 것이다. 우리는 시골 마을의 가로등처럼, 꼭 있어야만 하는 사람들이다. 아니, 가로등 같은 존재도 못 될지도 모른다. 가로등도 없는 마을의 반딧불이 정도는 되지 않을까. 없어도 되겠지만 반딧불이가 있어 여름밤은 한껏 풍성하고 아름답지 않은가.

    한심한 선배의 산만한 말을 성의 있게 들어주는 후배들이 고마웠다. 듣고 싶은 사람만 모여서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다들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알아서 걸러 들었고 넉넉히 웃어주기도 했다. 오히려 내가 큰 격려를 받은 셈이다.

    후배들이 자신의 취향과 특기에 근접하는 꿈을 찾고, 노력한 만큼 정당한 기회를 부여받아, 더불어 사는 사람들에게 이롭고 자존감 넘치는 업적을 쌓고, 경제적으로도 무난한 미래를 이루기 바란다.

    또 바란다. 지금처럼 책 읽기를 취미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독서의 씨앗을 퍼트리는 독서나비’로 살기를. 스무 살이 넘으면 독서가 끝나는 세태를 바꿔주기를. 좋은 책을 아무리 읽어도 진학과 출세에 지장이 없는 제도를 이루기를. 반딧불이 작가들이 최소한의 자부심을 유지하며 빛내는 세상을 만들기를. 자존감 넘치는 작가가 많이 탄생하기를. 먼 훗날 후배들을 만나 독서가와 작가의 싹을 보거든 열렬히 북돋을 수 있기를.

    김 종 광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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