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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닉네임 유감- 이학수 사회2부장

  • 기사입력 : 2018-07-2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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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루킹 징역 2년6개월… 서유기·둘리 1년6개월 구형’ ‘드루킹 공범 서유기 주말 소환’. 인터넷 여론 조작사건으로 특검이 진행 중인 드루킹 사건 관련 기사 제목들이다. ‘드루킹’ ‘서유기’ ‘둘리’는 이들이 활동한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 공간에서 본명 대신 사용하던 닉네임이다. 본명보다 닉네임이 더 유명한 사람들이다.

    ▼드루킹은 유명 온라인 게임의 캐릭터인 ‘드루이드’와 왕을 뜻하는 킹(king)의 합성어라고 한다. 사람들은 김동원은 잘 몰라도 드루킹은 안다. 경공모 회원들은 오프라인 모임에서도 닉네임을 부르기 때문에 본명을 모른다고 한다. 학연, 집안, 배경을 알면 선입견이 생긴다는 이유에서다. 경공모 회원들은 드루킹이 일한 파주 한 출판사를 ‘산채’라 불렀다. 문득 수호지의 양산박이 생각난다. ‘하늘을 대신해 도를 행한다’(替天行道). 양산박 호걸들은 이런 명분을 내걸고 범죄를 저지르면서 나라에서 불러주길 희망했다. 그들도 그랬을까.

    ▼닉네임은 예전 PC통신이나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애칭이다. 아마 닉네임 1~2개씩은 갖고 있을 것이다. 스스로 짓는다는 점에서 별명과는 다르다. 별명은 사람의 특징을 담아 주로 남들이 지어서 부르는 이름이다. 옛 사람들은 이름을 부르는 게 결례라 하여 호(號)를 붙였다.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 백범 김구, 도산 안창호…. 그러나 호와 이름은 별개가 아니었다. ‘추사’ 하면 김정희가 연상되고, ‘다산’ 하면 정약용이 떠오른다. 호와 함께 부를 때 이름도 빛났다.

    ▼요즘 드루킹 사건을 보면서 본명은 숨고 닉네임만 쫓는 것 같다. 닉네임과 본명을 한 덩어리처럼 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본질은 없고 허상, 가면을 들여다본다는 느낌이다. 실재로서 한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가짜를 보면서 죄를 묻는 것이다. 드루킹이 죗값을 치르고 나면 드루킹 대신 또 다른 닉네임을 쓸지 모른다. 대중은 그림자한테 책임을 묻고 만족할 것이다.

    이학수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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