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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년생 김지영에게- 김정선(고성경찰서 여청계장·경감)

  • 기사입력 : 2018-07-2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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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은 퇴근 후 소파에서 빨래를 정리하고 있는 나에게 고 1학년인 딸이 내게 질문을 한다. “엄마, 엄마는 우리나라가 여성의 인권이 높다고 생각해요?”

    뜬금없는 질문에 나는 나도 모르게 “아니”라고 답하고,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고 물어보니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독서록을 쓰면서 엄마 생각이 궁금해서 묻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요즘은 연일 뉴스에서 여학교 기숙사 불법촬영 보도를 들어서인지, 화장실에 가면 주변을 둘러보고 또 변기도 한 번 더 살피고도 혹시나 하면서 불안한 마음으로 볼일을 보는 습관이 생겼다고 했다.

    딸의 말을 들으면서 바쁘게 개고 있던 빨래를 보면서 왠지 모를 답답함과 미안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딸을 둔 40대 중반을 넘긴 대한민국의 어머니로서의 답답함과 20년 이상 근무한 대한민국의 경찰관으로서 미안함일 것이다. 그 무엇보다도 편안하고 안전해야 할 화장실도 마음 놓고 이용하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 ‘몰카’는 비단 우리나라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유교문화의 뿌리가 깊은 우리나라에서는 성폭력,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등의 범죄에 있어 여성 피해자는 덜 배려받고 이로 인해 더 깊은 상처를 받는 것 같다.

    우리 경찰에서조차도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짧은 치마를 착용해 오히려 피해자가 범죄를 유발했다거나, 가정폭력의 경우에는 아내가 말대꾸를 하니까, 데이트폭력은 사랑싸움으로 가볍게 취급하고, 또 스토커의 경우에도 ‘너는 좋아해주는 남자가 있어 좋겠다’며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다소 느슨한 수사관행이 더 큰 범죄로 발전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고, 결국 큰 범죄가 발생한 후 이슈가 됐다가 다시 잠잠해지기를 반복한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무엇보다도 시대가 변했고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스토커 등이 중대범죄라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우선 경찰관인 나부터 깊은 반성과 각성을 해야겠다. 아울러 경찰은 뼈를 깎는 노력으로 적극적이고 신속한 전문수사로 여성범죄를 처리하고, 그러면서도 세심함을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국민들이 경찰의 도움을 필요할 때 경찰은 반드시 도와준다는 절대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올 초 미투 캠페인부터 최근 홍대 누드 및 여고 기숙사 불법촬영물 유포사건으로 여전히 대한민국은 불안하고 힘들다.

    물론 한 번에 완벽하게 인식의 전환을 가져올 수는 없다. 가랑비에 옷이 서서히 젖듯이, 차츰차츰, 하나씩 하나씩 개선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딸에게 우리나라의 여성인권은 높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김 정 선

    고성경찰서 여청계장·경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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