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21일 (수)
전체메뉴

선비의 발 씻기- 이문재 정치부장·부국장대우

  • 기사입력 : 2018-07-30 07:00:00
  •   

  • 너무 더워서일까. 좀 생뚱맞은 기억이 떠오른다. 어릴 적 겨울의 기억이다. 살던 집과 담 하나를 두고 두부공장이 있었다. 당시는 따뜻한 물이 귀한 시절이었다. 밤새 연탄불 위에 물통을 뒀다가, 아침에 온 식구가 조금씩 나눠 쓰곤 했다. 온수가 모자라거나 급할 때는 석유풍로 위에 물을 따로 데워야 했다. 틀기만 하면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오는 보일러는 구경도 못했다. 이웃한 두부공장은 온수 공급처였다. 콩을 삶고 버리는 물은 깨끗한 데다 냄새도 좋았다. 게다가 따끈따끈해 추위에 튼 손이나 얼어 터져 있는 발을 씻는 데는 최고였다.

    ▼옛 선비들은 폭염이 계속되면 시원한 계곡을 찾아 찬물에 발을 씻는 탁족(濯足)을 즐겼다고 한다. 옷을 벗고 멱을 감자니 체면이 구겨지고, 아쉬운 대로 발을 담그고 씻는 것으로 피서를 즐긴 것이다. 발은 신체 중 온도에 민감한 부위라, 냉수든 온수든 즉각적인 반응이 있다고 한다. 교감신경이 몰려 있어 냉·온 감각 전달이 빠른 목덜미와 비슷해 보인다. 특히 발은 ‘제2의 심장’이라, 손으로 씻고 주물러주면 경혈을 자극해 피로를 풀어주고 활력을 불어 넣기도 한다.

    ▼선비들은 탁족을 단순히 발을 씻고, 더위를 잠시 잊는 데서 그치지 않은 것 같다. 발을 씻는 것조차도 수양(修養)의 한 방편으로 삼았다고 하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것이 선비다움(?)을 위한 핑계이거나, 선비들의 자의적인 해석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이때 선비들이 떠올려 가슴에 다시금 새겼던 문구가 ‘청사탁영 탁사탁족(淸斯濯纓 濁斯濯足)’이다.

    ▼‘청사탁영 탁사탁족’은 사서삼경 중 맹자(孟子)에 나오는 구절로,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흐리면 발을 씻는다’는 의미다. 갓끈을 씻는 깨끗한 물이 되느냐 아니면 발이나 씻는 더러운 물이 되느냐는 스스로에 달려 있으니 수행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울러 어떤 일에 있어서도 ‘원인을 남탓으로 돌리지 말고, 스스로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성찰의 메시지도 담겼다. 더위를 물리는 잠깐의 시간에도 자신의 본분과 역할에 고심했던 선비들의 삶. 오늘날 또 그 누군가가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

    이문재 정치부장·부국장대우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