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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뜨거운 여름, 의병(義兵)에 대한 사색- 박환기(의령군 부군수)

  • 기사입력 : 2018-07-3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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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병은 학술적 의미로 ‘나라의 소집이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오직 정의 수호와 애국애족 정신에 입각해 자발적으로 일어나 외세에 대항한 민병’을 말한다. 우리 민족사에서 의병의 활약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조선시대를 거쳐 일제강점기 독립군의 모태가 됐고 해방 후 국군으로 이어졌다.

    필자가 몸을 담고 있는 의령은 누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의병의 고장이자 충절의 고장이다. 의병을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의병의 힘으로 하나가 되곤 한다. 1592년 4월 13일. 조선은 당쟁의 혼란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왜의 침입을 받는다. 믿었던 관군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전쟁이 발발한 지 불과 20여 일 만에 한양이 왜군의 손아귀에 넘어간다. 하지만 의령의 작은 마을 세간에서 전국 최초로 의병이 일어난다. 왜군의 침입이 있은 지 불과 9일 만인 4월 22일, 일찍이 남명 조식의 문하에서 수학한 망우당 곽재우가 그 주인공이다. 남명은 실천·실용이 따르지 않는 이론과 지식은 아무런 쓸모가 없음을 강조했다. 스승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에 옮긴 것이다. 의병은 작지만 강했다.

    의령에는 의병의 고장답게 많은 의병 관련 유적지와 인프라가 구축돼 있다. 곽재우 생가를 비롯해 북을 걸어 의병을 모으고 훈련시켰던 현고수, 곽재우 장군 첫 승전지인 기강나루, 왜군의 전라도 진격을 막아 내고 경상우도와 전라도 곡창지대를 지켜냈던 정암진 전적지가 있다. 그리고 충익사와 의병박물관에는 의병의 혼과 이야기가 가득하다.

    ‘평화로운 시절 나라는 왕과 벼슬아치들의 것이었다. 하지만 망국의 위기에 나라를 책임진 사람은 이름 없는 백성들이었다. 의병, 그들은 불길처럼 일어나 전설이 돼 우리들 가슴 속에 남아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 없는 대화라고 하지 않았던가. 뜨거운 여름 한가운데에서 정암루에 올라 임진년 칠월의 의병들을 불러본다. 그날의 뜨거웠던 함성에 실려 오는 의병에 대한 나의 사색은 남강 바람에 실려 길을 잃었다. 역사는 영웅이 쓰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삶 그 자체라고.

    박 환 기

    의령군 부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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